역사소설, 새 ‘문법’을 갖다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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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59) 씨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출간 한 달 만에 교보문고와 인터넷서점 예스24,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집계 종합 2위에 올랐다. “이달 말이면 무난하게 10만 부 판매를 돌파할 것 같다”는 게 출판사의 예상이다.

스타 작가 신경숙(44) 씨의 역사소설 ‘리진’도 이달 말께 나올 예정이어서 역사소설 열풍이 이어질 참이다.》

○ 사회상 닮은 ‘남한산성’ 베스트셀러 2위

계간 ‘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특집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에서 평론가 서영채(46) 씨는 ‘뉴에이지 역사소설’이 등장했다고 밝히면서, “이들은 (과거의 역사소설과 달리) 역사 속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생생한 현재성의 광장으로 역사를 끌어내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역사소설은 박종화의 ‘금삼의 피’ 같은, 흥밋거리를 찾아 역사에 뛰어드는 사담류와, 홍명희의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이념의 투영체로 분류됐지만, 최근의 역사소설은 과거의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한산성’의 경우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 치의 차이도 없어 보인다’ ‘주어진 삶을 사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독자 리뷰가 이어진다. 신경숙 씨의 ‘리진’도 구한말 궁중무희 리진의 삶을 다뤘지만, 리진을 친딸처럼 여기는 왕비와의 시공을 초월한 모녀지정과 내면 묘사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평론가 신수정(42) 씨는 “거시적인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적으로 이입 가능한 인물을 창조하는 게 요즘 역사소설의 흐름이며 ‘리진’은 그 사례”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다. 올해 출간될 김연수(37) 씨의 장편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유격대의 내분에 관한 이야기다. 짤막한 자료에서 김 씨가 착안한 것은 같은 종(種)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현재까지도 내림 되는 양상이다. 춘원 이광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다룬 ‘올보리 선생 말년 수난기’를 문예지에 연재하는 이기호(36) 씨는 “정신으론 닥쳐 온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지만 몸은 지난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고뇌가 주제”라고 밝혔다. 올해 초 나온 노희준(35) 씨의 ‘킬러리스트’는 항일 빨치산을 소재로 삼았으면서도 1980년대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 “이야기 위해 역사 빌릴 뿐… 역사물과 달라”

김연수 씨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역사를 차용하는 게 요즘 역사소설”이라고 말한다. 표준 국사로서의 역사를 소설화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소재를 역사에서 찾아낸다는 것이다.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등 역사소설에 매진해 온 소설가 김탁환(39) 씨도 “교과서 역사가 아닌 ‘대중 교양으로서의 역사’가 부각되면서 소설뿐 아니라 TV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역사를 ‘거대 담론’이 아니라 ‘콘텐츠’로 보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문단에서는 역사소설을 이미 갖춰진 서사에 소소한 에피소드만 더하는 것으로 여겨 ‘역사소설을 쓰면 작가로서의 창의적 수명은 끝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요롭게 개입되는 새로운 이야기 형식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서영채 씨는 “소설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역사는 다양한 개성과 스타일의 장편 서사가 뛰어놀 수 있는 신선한 영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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