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수업]부모-자식 간 돈문제 티격태격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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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소설가 이청해 씨의 ‘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수업’을 연재합니다. ‘악보넘기는 남자’(문이당 간)등 4권의 소설집을 낸 이 씨는 한국 사회 중년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해 ‘인생파 소설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닙니다. 물질만능 세태에 대한 서글픔과 함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글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자식 자랑 끝에 으레 나오는 얘기들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 재산을 탐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농담이려니, 혹은 ‘이 힘든 세상을 살려면 재물 탐(貪)은 좀 있는 게 낫다’며 귀엽게 봐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애가 큰 집일수록 듣기 거북한 말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데이트를 하고 와서는 “엄마, 이 집은 형 거니까 시골 땅은 내 거지?”라든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엄마에게 “엄마가 왜 사? 집에서 놀면서” 식으로 적나라해진다는 것이다.

시골 땅 운운한 자식을 둔 엄마는 며칠 고민 끝에 아이를 불러 이렇게 못 박았다고 했다.

“지금 우리 재산은 얼마인데 아빠가 내년에 퇴직하면 향후 30년간 수입 없이 살아야 해. 엄마 아빠 한 달 생활비를 아무리 낮춰 잡아도 얼마 정도이니, 지금 갖고 있는 것 다 쓰고 가도 모자란다. 너희들한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는 그러고 나서 몹시 서글펐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는 아들은 장래 결혼이나 취직을 생각했을 터이고 제 벌이로는 아무리 궁리해도 요즘 같은 때 전셋집 마련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어찌 애 탓만을 하랴?

“엄마가 집에서 놀면서 왜 차를 사느냐”고 타박을 들은 친구는 좀 더 심각하게 마음을 다쳤다. 남편 잘 만나 유복하게 사는 자기 팔자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자랑했던 친구였는데 다른 데서도 아닌 자식한테 무시를 당했으니 기분이 어땠겠는가.

친구는 “애한테 (엄마 아빠가) 알뜰살뜰히 재산을 지켜 자기들한테 오롯이 물려주어야지 낭비하면 어떻게 하느냐의 취지란 말을 듣고 더 황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는 결국 구태여 비싼 차를 샀다. 그리고 그녀답지 않게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라스트 카’야. 길게 타면 10년, 어차피 다된 인생 아니니? 망할 놈의 세상, 차격이 인격이야. 집이 오두막집이든 뭐든, 통장에 돈이 있든 말든, 바깥에서는 오직 차로 사람을 평가하잖니.”

정말이라면 너무한 일이었고, 내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주변에서 보면, 어쨌든 물려받을 것이 많은 아이가 더욱 적극적이고 계산적이다. 아마도 돈의 위력 때문일 것이다.

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돈이 좀 더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란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행복하리라고. 그러나 돈은 항상 더 많은 돈에 의하여 박탈당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행복은 산 너머에 있는 것일까.

소설가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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