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인, ISS 가면 벽에 □를 붙인다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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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주인들은 발사장으로 향하는 도중 차에서 내려 바퀴에 소변을 보며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 사진 제공 랜덤하우스코리아
러시아 우주인들은 발사장으로 향하는 도중 차에서 내려 바퀴에 소변을 보며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 사진 제공 랜덤하우스코리아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실 벽에 붙어 있는 각국 지폐들(흰선 안). 사진 제공 미국항공우주국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실 벽에 붙어 있는 각국 지폐들(흰선 안). 사진 제공 미국항공우주국
《지난해 4월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10월 우주로 나가는 말레이시아 첫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무슬림은 1년에 한 번 있는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절을 해야 하며, 해가 떠 있는 동안

물과 음식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

무슬림 우주인은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다국적 우주인 시대가 만들어낸 신풍속도를 살펴봤다.》

우주정거장 별별 풍습들

○ 무슬림, 우주에서만은 재량껏 기도-금식

지상 350∼400km 상공에서 시속 1만7000km로 날아가는 ISS에서 메카의 방향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한 시간 반마다 해가 뜨고 지기 때문에 교리대로라면 하루에 80번씩 절을 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 우주인이 ISS를 방문할 2007년 10월은 라마단 기간과 겹친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 우주국이 최근 무슬림이 우주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담은 지침서를 출판했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우주인은 ‘재량껏’ 메카 방향을 찾아 절을 하고, 금식을 실천하지 못할 상황이면 지구로 돌아와 부족한 날수를 채워야 한다는 것. 또 이슬람 율법에 따른 가축 도살방식인 ‘할랄(Halal)’ 의식을 거쳤는지 확인하기 힘들면 배고파 못 견딜 때까지 참았다가 먹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말레이시아 종교부 관계자인 무스타파 압둘 라흐만 씨는 “우주 환경은 지구와 많이 다르지만 무슬림 우주인이 종교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러시아 우주인, 버스 바퀴에 소변보며 안전 염원

옛 소련 시절부터 많은 우주인을 배출해 온 러시아는 오랜 역사만큼 우주인이 지켜야 할 의식도 많다. 특히 우주인 배출의 산실 바이코누르 기지를 거쳐 간 각국 우주인은 한결같이 러시아의 독특한 ‘우주 의식’을 따라야 한다. 이곳을 출발하는 우주인들은 발사장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버스에서 내려 차바퀴에 소변을 봐야 한다. 1961년 4월 12일 세계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처음 시작한 이 의식은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기 위한 것.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가린은 ‘자연의 부름’이라고 답했다.

이후 기지를 거쳐 간 우주인들은 모두 발사에 앞서 이 의식을 치렀다. 올해 4월 소유스호를 타고 우주를 여행한 미국인 찰스 시모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여성 우주인은 예외다.

미국도 우주로 향하기 전에 우주인들이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발사 당일 특별한 아침식사를 받는다. 긴 식탁 한가운데 우주선 휘장으로 장식한 케이크를 두는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얼려 보관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개발단 최기혁 단장은 “첨단 우주여행 시대에 미신처럼 보이지만 안전 비행을 기원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담은 ‘풍습’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 자국 화폐 건네며 부탁하는 ‘센스’

여러 나라 우주인들이 머무는 ISS에서도 독특한 풍습이 생겼다. 우주인이 ISS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러시아의 전통 환영 선물인 빵과 소금을 받는다. 이어 우주인은 ISS 선실에 붙어있는 종을 쳐야 한다.

이 종은 2000년 미국 우주인 윌리엄 셰퍼드가 ISS에 새 우주인이 도착했거나 지구로 돌아갈 때를 알리기 위해 붙여놓은 것. 미국 해군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따왔다.

ISS에서만 통용되는 ‘에티켓’도 있다. 상대에게 뭔가 부탁할 때 자국의 화폐를 주면서 부탁한다. 물론 환율은 따지지 않는다. 한 미국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인에게 1달러를 건네며 “영화 한 편을 봐도 되겠느냐”고 장난스럽게 요청한 데서 시작된 이 관습은 이제 ISS 방문객 모두에게 통용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훈련 중인 첫 한국 우주인 후보들도 우주로 향하는 2008년 4월 이런 우주 풍속을 그대로 따를 예정이다. 후보 중 한 명인 이소연 씨는 “ISS 선실 벽에 1000원짜리 지폐가 붙어 있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이라며 “첫 한국 우주인도 우주공간에 새로운 풍습을 하나쯤 만들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

정답: 1000원짜리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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