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2명 소방교육받다 추락 사망

  • 입력 2007년 5월 17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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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자녀의 어머니들이 소방서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소방 안전 체험학습 현장에서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탔다가 어린이들이 보는 앞에서 추락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17일 오전 11시40분경 서울 중랑구 묵동 원묵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소방교육을 받던 정모(41·여) 씨와 황모(35·여) 씨가 중랑소방서 소속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탔다가 24m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같이 타고 있던 오모(36·여) 씨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서울 소방방재본부 김한용 본부장은 "굴절 사다리가 완전히 펴진 상태에서 사다리와 바스켓(사람들이 올라타는 부분)을 연결하는 와이어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바스켓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학부모들이 추락했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안전장치 전혀 없었고, 소방관도 동승 안 해=9시30분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에는 원묵초 4학년생 250여 명과 학부모 1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이 5, 6명씩 고가 사다리차에 탑승할 때는 바스켓에 소방관이 동승했다.

소방서 측은 2시간가량 한 번에 6명씩 40여 차례 학생들을 바스켓에 태웠다. 학부모들에게는 자원자를 모집했으며 자원자 3명이 마지막으로 바스켓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를 목격한 원묵초 4학년 유모(12) 양은 "아줌마들이 탄 사다리가 완전히 펴졌을 때 갑자기 크게 덜컹거리며 아줌마 두 명은 그대로 떨어졌고 한 명은 바스켓의 봉을 잡고 있다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탑승할 때는 소방관이 동승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소방차는 봉 형태로 접었다 펴지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의 '굴절형' 고가 사다리차로 1998년도에 제작됐으며 바스켓은 최대 340㎏까지 견딜 수 있다.

사고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소방관이 (아이들을 놀래 줄려고)고공에서 바스켓을 흔들었고, 몇몇 아이들이 바스켓 봉에 기대고 손을 흔들어도 소방관이 제지하지 않았다"고 말함에 따라 소방관들이 안전교육 절차를 지켰는지 조사하고 있다.

▽와이어, 안전점검대상에서 빠져=김한용 본부장은 "1970년대 굴절차가 한국에 도입된 이후 와이어가 끊어진 것은 처음"이라며 "굴절차와 바스켓을 연결하는 두께 1㎝, 길이 27m의 와이어 중 어느 부분이, 왜 끊어졌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이 와이어의 장력은 3¤4t이고, 바스켓의 하중은 340㎏ 정도이다. 문제는 와이어의 내구연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연 2회 차량 점검 시에도 와이어의 인장강도를 점검하지 않으며 와이어가 평상시 드럼 속에 감겨 있어 눈으로 보이는 부분은 50¤60㎝에 불과하다는 점.

굴절차의 '붐대'는 3단으로 접혀 있다가 끝에 달린 바스켓에 사람을 태우기 위해 높이에 따라 펴지는데 와이어는 붐대가 펴질 때 드럼에서 나왔다가 접힐 때 다시 들어간다.

소방관들은 매일 굴절차량을 점검하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만 확인하기 때문에 드럼 안에 들어 있는 와이어가 어떤 상태인지 볼 수 없고, 사고차량이 지난 2월21일 정기검사를 받았지만 와이어 테스트는 없었다.

사고차량은 출고 이후 와이어를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날 사건과 관련해 현장 책임자인 중랑소방서장을 18일자로 직위해제했다.

유족들은 "어떻게 안전교육을 받다가 사망할 수 있느냐"며 "소방서가 이렇게 허술하게 해놓고 안전교육을 했느냐"고 항의했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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