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한나라당은 무엇을 지키려 하나

  • 입력 200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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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소(對蘇) 강경외교와 ‘작은 정부’를 내건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위대한 사회’라는 진보 구호를 앞세운 민주당 린든 존슨 후보에게 참패했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서 졌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공화당 출신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자 “보수는 죽었다”는 자탄까지 나왔다.

절멸(絶滅)의 위기 속에서 보수진영은 자기혁신에 나섰다. 헤리티지재단 등 싱크탱크들이 정책 어젠다를 개발하고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 등 기독교 및 시민단체들이 도덕성 회복운동을 폈다. 16년간의 각고면려(刻苦勉勵)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신(新)보수 시대’를 연 밑거름이 됐다. 이런 자기혁신의 한 축(軸)이 ‘진보좌파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다. 지금도 미 보수 논객들은 ‘서민과 소수’를 팔아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진보 엘리트들을 ‘리무진 좌파’라고 비판한다.

한국의 보수우파는 ‘좌파=무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뉴라이트 등 시민운동단체의 치열한 담론투쟁의 산물이다. 정작 보수의 버팀목이 돼야 할 한나라당은 무임승차도 부족해 ‘보수=부패’라는 딱지를 못 떼고 보수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4·25 재·보권선거를 통해 국민은 한나라당에 ‘부패-철밥통 구조를 안 바꾸면 언제든지 심판하고 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그런데도 강재섭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 간의 경선 룰 다툼에 묻혀 있다가 어제서야 현역의원 1명을 포함한 21명의 ‘부패의혹 당원 리스트’를 윤리위원회에 넘겼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공천=당선’인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을 국회의원이 틀어쥐고 있으니 ‘군수는 3억 원, 광역의회 의원은 1억 원이 정찰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더욱이 대표 자신부터 과태료 대납사건에 연루돼 있다. 또 부인의 수뢰 사실이 드러나자 정계 은퇴를 공언하고도 버티는 중진 의원,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의원 등을 그냥 놔둔 채 ‘뼈를 깎는 개혁’을 외친들 국민이 공감할 리 없다.

시장경제, 작은 정부, 안보 중시 등 보수적 가치를 보수(保守)할 것이라는 믿음도 심지 못하고 있다. ‘부자당’ 소리를 들을까 봐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을 6억 원 이상으로 넓히는 데 합의해 주었고, 지난해 예산심의 때는 9조 원 감세를 호언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심지어 강 대표는 호남에 가서 “(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이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까지 망쳤다”는 ‘해바라기성 발언’까지 했다.

스타 기근에 허덕이는 범(汎)여권과 달리 한나라당은 이, 박 두 스타의 인기에 힘입어 그나마 버티고 있다. 그러나 결코 방심할 처지가 아니다. 여론조사만 봐도 보수-중도-진보의 3분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늘어난 중도 유권자의 상당수는 진보에서 옮겨 온 사람들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층이다. ‘한나라당이 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응답 비율도 26%에 불과하다.

이러니 여권에선 ‘맞춤형 후보만 찾으면…’이라고 벼른다. 좌파 진영은 “한나라당 꼴을 보면 이번 대선에 져도 5년 뒤 반드시 정권을 찾아올 수 있다”고 수군거린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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