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FTA 13년’ 멕시코의 명암

  • 입력 200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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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기가 이렇게 간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달 미국 텍사스 주(州) 국경도시인 매캘런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자 10분도 안 돼 리오그란데 강이 나왔다. 다리 중간지점을 지나자 바로 멕시코 땅이었다.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0분 달리니 레이노사 공단이 나왔다. LG전자,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의 공장이 즐비했다. 레이노사 공단은 이른바 대표적인 멕시코의 ‘마킬라도라’(수출자유지역). 마킬라도라는 해외 자본과 멕시코 노동력을 결합한 공단지역으로 멕시코 경제가 과거의 악성 인플레이션과 무역수지 적자 구조에서 탈피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LG전자 공장에서도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가 15초에 한 대꼴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때 목화밭에 불과했던 이곳은 멕시코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미국 휴대전화를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국경과 가까운 것이 최대의 강점이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몬테레이도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공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이곳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로 멕시코 전체의 7000달러를 웃돈다. 도시 전역에 활기가 넘쳤다.

레이노사에서 멕시코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콘스탄티노 카스티요 이노호사 씨에게 ‘NAFTA 때문에 많은 멕시코인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매우 균형을 잃은 분석이다. 레이노사만 보자. 지난 10년 동안 순수하게 창출된 일자리가 두 배로 늘었다. 멕시코 전체 경제지표도 많이 좋아졌다. 멕시코의 많은 문제를 NAFTA 탓으로 돌리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빈곤 문제 해결에 큰 진척이 없는 이유는 NAFTA 때문이 아니라 1995년 정정 불안으로 페소화가 폭락했던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도 정책 실패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멕시코 정부가 NAFTA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해 시행착오가 많았다. 농촌 대책과 교육 문제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시장으로부터 배우는 게 중요하다. 한국 정부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앞서 이미 글로벌 환경에 노출돼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멕시코 현장에서도 멕시코 경제의 명암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능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매니저급 직원들은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연봉이 5만 달러(약 4700만 원)가 넘었다. 그런데도 자격을 갖춘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반면 현장 근로자들의 월급은 대체로 400∼600달러 선이었다.

무역수지, 물가상승률 등 거시 경제지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면 경제성장률은 몇 년째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또 마킬라도라 등 국경지대 주요 공단지역에서 멕시코 현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점도 눈에 들어왔다. 과거 한국 경제개발 과정에서 해외투자기업과 함께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 토착기업들이 대거 출현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다.

한미 FTA가 이제 양국 입법기관의 비준동의만을 남겨 놓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고 10년이 지났을 무렵 과연 어떤 평가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멕시코처럼 ‘절반의 성공’에 그칠까, 아니면 한국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것인가.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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