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보다 먼저 ‘악’쓰는 배우들 호러평론가의 김빠진 데뷔작

  • 입력 200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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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설의 고향’(사진)은 이름만으로도 감독의 배짱을 읽을 수 있다. 한국 공포 드라마의 대명사를 떡하니 제목으로 달았으니.

누굴까. 김지환 감독. 영화감독으로선 데뷔작이지만 충무로에선 명성이 자자한 공포영화 전문가다. 수천 편의 공포영화를 섭렵한 ‘내공’을 바탕으로 영화전문지 ‘FILM 2.0’에서 ‘고어 마니아’ 등의 공포영화 전문 칼럼을 쓰며 이 ‘저주받은 장르’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

‘월하의 공동묘지’로 대표되는 한국 귀신사극영화의 계보가 1986년 ‘여곡성’이란 영화 이후 끊겼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보도 자료를 보고 알았다. ‘여고괴담’과 ‘장화, 홍련’은 같은 귀신영화라도 현대물이기 때문이란다. 전문가의 계보학적 열정을 읽을 수 있어 한국 공포영화의 원형을 찾겠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았다.

조선시대 한 고을. 쌍둥이 동생 효진과 함께 물에 빠졌다가 혼자 살아남은 소연(박신혜·17)이 사고 후 10년 만에 정신을 차리자 고을에선 원인 불명의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소연의 어머니(양금석)와 그녀의 정혼자 현식(재희)은 기억을 잃어버린 소연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효진을 발견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소연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착한 콩쥐와 못된 팥쥐라는 자매 모티브로 만든 이 영화는 ‘아직도 내가 ××로 보이니’ 하는 현대적 정체성 괴담을 사극에 끌어들였다. 소연의 정체를 둘러싼 의문은 확실히 극을 끌고 가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못된 소연과 착한 효진 역을 동시에 소화한 박신혜는 안정된 발성과 탄탄한 연기로 새로운 기대주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문제는 연출의 미숙함에 있었다. 스크린 속 등장인물들은 관객이 오싹함을 느끼기도 전에 비명부터 질러대기 바쁘다. 영화 내내 계속 ‘무섭지, 무섭지’라고 반문해대 오히려 김을 빼놓는 격이다.

소복 귀신이 너무 키가 커 들보에 부딪히는 장면이나 소연을 향해 무섭게 짖어대는 개로 조선시대에 있었을 리가 없는 셰퍼드가 등장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절반의 성공에 머문 ‘전설의 고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영화를 평하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천양지차라는 사실, 장르영화를 비트는 것보다 그 문법에 충실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이를 절감했을 감독의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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