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전 ‘뇌물대전’ 입선 500만원… 특선 2000만원

  • 입력 2007년 5월 17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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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협회가 복마전이었음이 경찰 수사로 확인된 가운데 16일 담당 형사들이 상을 받은 작품을 수록한 도록을 들고 뇌물을 주고 당선된 그림을 확인하고 있다. 앞쪽은 돈이 오간 통장들. 김재명 기자
한국미술협회가 복마전이었음이 경찰 수사로 확인된 가운데 16일 담당 형사들이 상을 받은 작품을 수록한 도록을 들고 뇌물을 주고 당선된 그림을 확인하고 있다. 앞쪽은 돈이 오간 통장들. 김재명 기자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수상작을 미리 정해 놓은 후 심사를 진행한 전현직 한국미술협회 간부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또 중견 작가들이 돈을 받고 공모전 출품작을 대신 그려 주거나 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미자격 회원을 신입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소문으로 떠돌던 미술계의 비리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 자격미달 회원 가입시켜 선거 부정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제자나 동료 화가에게서 돈을 받고 이들의 작품을 입상시켜 준 혐의로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하모(54) 씨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조모(60) 씨 등 심사위원과 협회 간부, 청탁 작가 등 미술대전 부정 심사 혐의로 49명, 이사장 선거 부정 혐의로 46명을 입건하는 등 1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하 씨는 협회 이사장으로 있던 지난해 4월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심사를 앞두고 이모 씨에게서 1000만 원을 받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넣어 이 씨의 작품을 특선에 입상시켜 주는 등 12월까지 모두 4명의 작품을 부당하게 특선에 입상하도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인화분과위원장 김모(53) 씨 등 2명은 제자 등에게서 5600만 원을 받고 지난해 4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모텔로 심사위원 11명 중 7명을 불러 2, 3일간 합숙시키며 이들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을 미리 외우게 한 뒤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모(65) 씨 등 중견 작가 2명은 2005년과 2006년 각각 1000만∼1500만 원씩 금품을 받고 다른 작가들의 미술대전 공모작을 대신 그려 주는 등 대작(代作)이 성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미술협회 이사장 노모(57) 씨는 지난해 말 이사장 선거 과정에서 작품발표 실적과 연한을 허위로 기재한 부적격자 수백 명을 신입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수법으로 표를 끌어 모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 심사-집행위원 비율 정해 입상 나눠먹기도

지난해 4월 실시된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는 20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1차에서 모두 391점이 입선됐다. 이 가운데 113점은 2차 심사에서 특선으로 입상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황용수 팀장은 “지난해 말 한 미술계 종사자의 제보를 받고 수사를 벌여 왔다”며 “1차와 2차에 입상한 작품의 95% 이상이 돈을 주고 당선된 작품이다. 미술계에서는 입선은 300만∼500만 원, 특선은 1500만∼2000만 원 등 상금을 반납한다고 약속해야 당선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심사위원부터 집행위원들이 비율을 정해서 자기 제자들의 입상을 미리 나눠 먹어 왔다”며 “미술협회 전체가 썩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은 1949년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가 8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거쳐 89년 미술협회로 운영권이 넘어왔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 작가 등용문이다.

미술협회는 전국 137개 지부, 2만400여 명의 회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간 회비로 지방 회원에게서는 2만5000원, 서울 거주 회원에게서는 3만6000원을 걷고 출품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당 참가비 5만원을 내야 한다.

경찰은 문인화 부문보다 규모가 더 큰 서양화, 동양화, 서예 등 다른 부문에서도 조직적으로 사전심사와 금품수수 등 비리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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