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값 요동치는데… 실물 없는 선물 시장

  • 입력 2007년 5월 17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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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 소시지 등의 원료로 매년 2만 t의 돼지고기를 구매하는 식품업체 CJ㈜는 예산을 맞추느라 자주 고민을 한다. 돼지고기 자체 수요 변동 요인도 있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 광우병 파동 등으로 닭고기나 쇠고기 수요가 들쭉날쭉해지면 돼지고기 가격도 덩달아 춤추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현재 돼지고기 가격(도축 상태인 지육 기준)은 kg당 3000원대 중반 수준이지만 하루 등락 폭이 적게는 200∼300원, 많게는 600∼700원으로 전문 기관의 예측도 번번이 빗나간다”고 했다.

앞으로 식품업체의 이런 고민은 상당히 덜어질 것 같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올 하반기(7∼12월) ‘돼지고기 선물(先物)’을 상장해 거래소에서 사고팔면 현재 시점에서 1∼6개월 뒤의 돼지고기 가격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거래소에는 실물상품으로는 유일하게 금이 상장돼 있지만 최근 1년 동안 거래가 거의 없어 흐지부지된 상태다. 두 번째로 시도하는 상품선물인 돼지고기는 이 때문에 관심이 높다.

○ 급증하는 상품선물 거래

최근 세계 상품시장에서는 2, 3년간 원자재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상품선물 계약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KB선물 김도영 해외영업부장은 “구리 가격이 1년 전 t당 8800달러에서 올해 2월엔 5000달러, 이달엔 8000달러에 이를 만큼 가격 등락이 심하다”며 “가격 변동의 위험을 피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세계선물업협회(FIA)에 따르면 2006년 세계 각국의 상품 선물계약(옵션 포함)은 10억9500만 건으로 전년보다 32%나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상품거래소 이용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선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상품거래소 이용 실적은 농산품(옥수수 원당 대두)이 17만 건으로 4년 전인 2002년보다 197.6% 급증했다. 알루미늄과 금도 같은 기간 각각 124%, 50.0% 늘었다.

가격 변동뿐 아니라 다양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상품선물도 나온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가 올 3월 상장한 ‘재해위험지수’는 보험사가 허리케인 화산 등 자연재해로 생기는 손실을 피하는 상품이다.

○ 한국 상품거래는 이제 첫걸음

동, 알루미늄 등 6대 비철금속의 세계 5위 소비국가인 국내에서도 다양한 상품선물 거래 수요가 늘고 있다.

고려아연의 한 관계사는 “영국의 런던금속거래소(LME)를 통해 아연 선물을 팔고 있지만 비철금속과 귀금속은 전산화가 안돼 야간에 전화로 거래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 해외 거래소를 이용할 때 환헤지(위험 회피)를 해야 하는 것도 기업엔 부담이다.

이 때문에 국내 거래소는 돼지고기 등 다양한 상품 개발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선물거래소 신승철 마케팅팀장은 “선물시장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선물의 기초자산인 현물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하지만 구리 에너지 등 원자재는 사실상 독과점으로 거래돼 자유로운 가격 형성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선물(Futures)

국채 달러화 주식 등 금융상품이나 원자재 곡물 귀금속 등 실물(實物)을 미래 일정 시점, 미리 정한 가격에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것. 현물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관리할 수 있고, 전체 거래액의 일부만 증거금으로 내면 돼 거래 비용이 적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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