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부처와 예수, 밥솥을 맞들다

  • 입력 2007년 5월 16일 0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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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많이 드십시오.”

“아휴, 신부님과 스님께서 이런 수고를 다 하시고…. 잘 먹겠습니다.”

14일 낮 12시 대구 중구 보현사 무료급식소인 ‘자비의 집’.

경산성당 정홍규(53) 주임신부와 동화사 허운(48) 주지스님이 앞치마를 두른 채 이 사찰 신도들과 함께 정성 들여 준비한 밥과 반찬 등을 무의탁 노인과 노숙자 등 700여 명에게 나눠 줬다.

이들의 봉사활동에는 가톨릭 대구대교구 소속 신부와 보현사 스님 등 5, 6명도 동참했다.

천주교와 불교 간 벽 허물기 운동을 펴 오고 있는 정 신부는 ‘부처님 오신 날’(24일)을 앞두고 소외된 이웃에게 베풂과 헌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정 신부 등 천주교 인사들의 이날 봉사활동은 허운 스님 등 지역 불교계 인사들이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 중인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을 방문해 신부들과 함께 급식봉사를 한 데 대한 보답의 의미도 담겨 있다.

정 신부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는 불교와 천주교가 따로 없다”며 “부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도 허운 스님과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허운 스님과는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수습을 위한 활동을 함께하면서 인연을 맺은 뒤 5년째 크리스마스와 사월초파일에 상호 방문과 교류 등을 통해 화합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 신부와 허운 스님은 지난달 대구에서 출범한 ‘작은은행(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도 공동으로 맡았다.

생활이 어려운 주민에게 무담보로 창업자금 등을 빌려 주는 신용대출기관인 작은은행은 지역 각계 인사 7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형편이 어려운 모자가정에 저리(연 4% 미만)로 자금을 우선 지원할 예정.

작은은행은 세무, 법률 자문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저소득층 자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정 신부는 “작은은행 발기인들의 도움으로 현재 운영자금을 확보한 상태”라며 “이르면 사단법인 등록이 마무리되는 다음 달 대출용 자금을 추가로 확보해 대출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출자금 마련을 위해 허운 스님 등과 함께 지역 기업인을 찾아다니며 기금 출연을 권유할 것”이라며 “믿음과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 사업이 소외된 이웃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운 스님은 “분열과 대립이 넘치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 모든 종교인이 앞장서야 한다”며 “두 종교의 교인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화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빈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기관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에서 시작돼 이 은행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노벨 평화상을 타면서 널리 알려졌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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