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고령자 정보화 교육운동 ‘휠체어 여행가’ 스콧 레인스 박사

  • 입력 2007년 5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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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암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스콧 레인스 박사. 그는 ‘장애는 내 삶에 부과된 일종의 규칙이라고 정의하면서 “장애를 수치스럽게 여기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게 된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척추암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스콧 레인스 박사. 그는 ‘장애는 내 삶에 부과된 일종의 규칙이라고 정의하면서 “장애를 수치스럽게 여기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게 된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빨간 셔츠를 입고 환한 웃음을 띤 중년의 미국 남자가 휠체어 바퀴를 밀며 약속 장소로 들어왔다. 편안한 미소는 불편한 하반신과 대비되어 더욱 빛이 났다.

‘휠체어 여행가’ 스콧 레인스(53) 씨다. 16일부터 경남 남해에서 열리는 고령화 국제학술대회 ‘액티브 에이징 콘퍼런스’에 초청되어 자신이 일하고 있는 미국 고령자들을 위한 정보화 공동체인 ‘시니어넷’을 소개하기 위해 방한했다.

물론 한국 여행도 포함되어 있다.

휠체어 여행이라니,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뭔가를 정복한다고 생각하면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 여행은 좌절이고 절망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 여행도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이름 없는 마을이나 소도시의 거리를 찾는데 그런 곳에서는 장애 때문에 느끼는 아쉬움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이 있다.”

1954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평범한 청년으로 자란 그에게 18세 생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시련이 닥쳤다. 오랜 꿈이었던 스키 강사 자격증을 따 놓은 직후였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1년 전 손에 생겨나 제거한 종양이 척추까지 전이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척추암이었다. 두 차례의 대수술 끝에 생명을 얻는 대신 하반신을 잃었다.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웠으며 외로웠던 시기였다. 당시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이대로 생을 끝낼 수는 없다’는 오기였다.”

퇴원한 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워싱턴대(언어학)에 입학했다. 대학 최초로 장애학생모임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졸업한 뒤 신학연구에 몰두했다. 가혹한 시련을 내려 준 신의 뜻을 알고 싶어서였다. 신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강단에 섰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이 있었지만 신이 준 사명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처럼 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10여 년 전 안정된 대학 강사 자리를 버리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집을 지어 주는 비정부기구(NGO) ‘에덴 하우징’의 기술 교육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동경해 왔던 ‘떠나는 삶’을 실천에 옮겼다. 중남미,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 아시아 국가들을 휠체어에 의지해 누비고 다녔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 문화를 배우고 느끼면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매번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

여행의 절반은 동행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혼자였다.

“떠나기 전에 남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 일정이 틀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같은 곳을 찾는 동선도 서너 가지를 놓고 궁리한다.”

그가 2005년부터 일하고 있는 ‘시니어넷’은 은퇴 노인들에게 인터넷 사용법을 교육하는 비영리 단체. 미국 내 센터가 200여 곳이나 되고 가입자만 수십만 명이다. 그는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는 팀장을 맡고 있다.

레인스 씨는 “노인들에게 특히 컴퓨터 교육은 필수”라고 말했다.

“거울에 비친 종이 위에 이름을 써 보면 처음에는 (좌우가) 헷갈리지만 두뇌를 자극하는 좋은 훈련이 된다. 컴퓨터는 정신을 자극하는 좋은 훈련이다. 노인 건강은 젊은이들의 부양 부담을 덜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가 장애 여행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롤링 레인스’(www.rollingrains.com)에는 여행가이자 교육가로서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다.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여행정보를 올리는 게 목표다. 한국에 관한 정보도 곧 올라갈 것이다. 번역 서비스도 있으니 블로그 화면 왼쪽의 태극기를 클릭하시라.”

36년을 휠체어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 ‘몸의 장애’란 무엇일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에 부과된 일종의 ‘규칙’이다. 장애를 치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수치심이 생긴다. 그런 편견들이 내면화되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다.”

그는 여행가답게 장애인들에게도 “집 밖으로 나와 돌아다녀라”고 조언한다.

“집안에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장애인을 가치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회체계를 알고 맞서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화를 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에 대해 당당하고 자긍심을 가지면 화를 낼 일도 없다.”

레인스 씨는 올해로 결혼 25주년을 맞는 아내와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에서 살고 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스콧 레인스 박사▼

△1954년 미국 시카고 출생 △1977년 워싱턴대 학사(언어학) △1991년 시애틀대 석사(신학) △1998년 신학재단 대학원 박사(신학) △1998∼2005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 단체 ‘에덴 하우징’ 기술 교육 팀장 △2004년∼현재 장애인 여행정보 블로그 ‘롤링 레인스 리포트’ 운영자 △2005년∼현재 노인 정보화 교육 공동체 ‘시니어넷’ 프로그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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