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기업 사냥꾼’ 美 사모펀드의 힘

  • 입력 2007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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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이슬러 인수한 서버러스

‘거대 기업을 삼켜버리는 글로벌시장의 새 지배자.’

최근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기로 한 미국의 사모펀드 서버러스를 두고 15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붙인 표현이다. 외신들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전 세계 금융권과 인수합병(M&A)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거대 사모펀드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펀드가 굴리는 자금과 투자 규모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신흥국가의 성장을 바탕으로 투자 대상이나 지역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미국 사모펀드가 지난해 기업 인수에 쏟아 부은 돈은 약 4000억 달러. 자동차나 제조업, 호텔, 정유, 군수분야는 물론 식품 음료와 패션 미디어 산업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손을 뻗친다. 덩치가 큰 거래에는 사모펀드들이 공동 인수에 나서기도 한다.

서버러스의 경우 크라이슬러에 앞서 최근 항공회사 에어캐나다의 일부와 자동차 렌털 체인회사인 ‘내셔널 앤드 앨러모’ 등 굵직한 회사 매입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에는 델파이 등 자동차 관련회사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운영 자산을 기준으로 사모펀드 1위에 올라 있는 블랙스톤 그룹의 인수 자금은 100억 달러 단위. 미국의 최대 오피스 빌딩 소유회사인 에쿼티 오피스 프로퍼티스 트러스트를 단독으로 인수하면서 230억 달러를 지불했다.

한국의 한미은행을 인수하기도 했던 칼라일 그룹은 파이프라인 운영업체인 킨더 모건을 146억 달러에, 2005년에는 포드 자동차의 헤르츠를 150억 달러에 공동 매입해 상장시켰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패션그룹 발렌티노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운영자금 규모 3위인 베인 캐피털은 지난해 병원운영업체 HCA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업체인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스’를 각각 공동 인수했다.

이들 사모펀드는 탄탄한 인맥을 기반으로 재계는 물론 정계에까지 입김을 행사한다.

칼라일 펀드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같은 정계 거물급 인사들이 투자자 리스트에 포함돼 있고,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텍사스 주지사 선거 출마 전까지 관련회사의 이사로 재직했다. 중동의 투자자도 다수 확보했을 뿐 아니라 군수사업 관련회사도 여럿 거느리고 있어 ‘군 사업가’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

베인 캐피털의 공동창립자는 공화당 대선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블랙스톤에는 과거 하원 예산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톡먼 씨가 소속돼 있다. 서버러스는 재무장관을 지낸 존 스노 씨를 이사회 의장에, 댄 퀘일 전 부통령을 홍보 담당 책임자로 앉혔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도 2001년 이 펀드에 투자했다.

사모펀드들은 영입 외에 정치 후원금을 제공하거나 로비스트를 보내 워싱턴 인사들을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정부 사업을 따내는 것은 물론 투자 정책이나 펀드 규제 관련 입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모펀드의 독주가 경제에 미칠 나쁜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기투자나 노동환경 개선에 신경을 쓰기보다 단기간에 차익을 거두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인수합병 때 고용보장 및 차익 배분에서의 지분 보장을 미리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늘어나고 있다.

다트머스대 콜린 블레이던 교수는 “서버러스의 크라이슬러 인수는 사모펀드가 경제 분야 전반에 미칠 영향을 따져볼 수 있는 실험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소수의 투자자를 비공개로 모집해 운용하는 펀드. 공모펀드보다 규제가 적어 비교적 자유롭게 운영된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단기간에 수익을 올린 뒤 다시 파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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