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종섭]로스쿨, 定員논쟁은 무의미하다

  • 입력 2007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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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법학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이라는 대안이 처음 제시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현 정부에서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마련한 로스쿨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태다. 로스쿨에 대한 논의는 처음 제기된 때와 비교하면 1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오해도 다소 해소됐다.

국회에 제출된 안이 법학교육의 목표를 법률가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지향점을 선발 방식에서 탈피해 양성 방식으로 설정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이 안은 매년 배출하는 법률가의 수를 1000여 명에 고정시킨 채 이에 맞게 몇 개의 대학에만 로스쿨을 인가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어 사법시험 선발시험의 틀을 깨지 못한다. 따라서 로스쿨로 전환돼도 법과대학이 고시학원으로 전락해 버린 현 상황은 해소되지 않는다.

더구나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만 1000여 명을 뽑는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법학은 이들만을 위한 고시과목으로 존재하게 된다. 법학이 소수의 법률 귀족을 만드는 수단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법학도는 인성 개발과 법에 대한 고뇌는커녕 시험 기술에만 매달리게 된다. 대학원으로 승격시키면서도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등록금만 비싸지고 사회로 진출하는 시간만 지연된다. 요컨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고 법학교육은 더 악화된다. 그래서 현재의 안은 ‘무늬만 로스쿨’일 뿐 법학교육과 법학을 질곡으로 밀어 넣는 개악이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학부 로스쿨’도 검토해 볼 만

법학교육을 개혁한다면서 이런 기형적인 모습을 만들어버린 것은 매년 배출되는 법률가의 수만 가지고 싸우다가 법학교육 본래의 목표와 지향점을 놓쳐 버린 데서 비롯한다. 매년 1000명의 법률가를 배출하는 현재 상태에서도 법률가의 수는 무의미하다. 1000명을 뽑든 2000명 또는 3000명을 뽑든 마찬가지다. 실제 사회 수요에 필요한 법률가는 600∼700명이기 때문에 현재도 사법시험은 선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1000명 시대의 경험이 입증했듯이 이제는 판사와 검사, 행정부 또는 국회의 공무원은 그에 적합한 전형을 통해 각기 선발할 필요가 있다. 나머지 법률가들은 변호사든 다른 직업이든 제각각 시장의 수요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사법연수원 시스템은 더는 적합하지 않고 판사, 검사, 변호사, 국회 또는 행정부 공무원은 먼저 임명된 후 각기 해당 직역의 연수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이제 법률시장이 개방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시장의 변화가 생기고 법과대학도 성쇠(盛衰)가 불가피하다. 법률가 수요가 많아지면 대학은 로스쿨로 전환할 것이고 적어지면 로스쿨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다른 분야에 투자할 것이다. 법학교육도 시장에 적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종래와 같은 프리미엄은 가질 수 없다.

이 같은 상황 변화를 직시한다면 법률가의 수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이 이렇다면 로스쿨 논의에서 남은 문제는 현재의 4년제 학부를 혁신해 학부에 로스쿨을 만드느냐(캐나다식), 아니면 대학원에 따로 로스쿨을 설립하느냐(미국식) 하는 문제만 남는다. 대학원형 로스쿨이 미국만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선택의 리스크가 높다는 지적도 경청할 만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학부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것도 적극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어느 경우든 법학교육 개혁의 본래 목적에 충실할 수 있으면 된다.

마침 대한변호사협회의 집행부가 바뀐 후 학부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안을 내놓은 만큼 이제 견해차가 매우 좁혀졌다. 대학원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데 대해 대학에서도 우려하는 의견이 많은 만큼 일단 기존의 법과대학을 로스쿨로 개편해 법학교육의 개혁을 이룬 다음 그 성공 여부를 보면서 대학원형 로스쿨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6월 국회에서 입법 마무리해야

학부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이를 4년제로 할 것인지, 5년제 또는 6년제로 할 것인지도 논의할 수 있으므로 법학교육에 관한 다양한 의견도 수렴할 수 있다. 6월 국회에서는 법학교육의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논의를 좁혀 가면 이제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논의가 뒤틀릴 때는 언제나 법학교육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헌법학 jsch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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