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즐거운 보고서 소동

  • 입력 2007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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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있었던 ‘보고서 소동’이다.

팀장이 회식 자리에서 “팀 단합을 위해 스포츠를 같이 하면 어떨까”라고 가볍게 말했다. 며칠 뒤 한 팀원이 A4 용지 10여 쪽 분량의 ‘팀 내 스포츠 활동 방안’이란 보고서를 제출했다. 팀장은 ‘아차’ 하면서 자신의 술자리 발언을 후회했다고 한다.

본보 토요일자 ‘위크엔드 동아경제’에 연재되고 있는 ‘입사 선호 업종별 1위 기업’에 소개된 내용이다.

필자는 ‘보고서 소동’을 삼성전자 팀장과 다른 관점에서 봤다. 말단 직원까지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이처럼 문제를 분석하고 창의적 해법을 내놓는 일을 상징분석(symbolic analysis)작업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선 오직 이와 관련된 일자리만이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계속해서 전자업종 입사 선호 1위를 유지하려면 직원들의 자발적 보고서 제출을 격려해야 한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가 동시에 늘어나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저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개인서비스다. 식당 종업원, 점원, 경비, 간병인 등이다. 이들의 임금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 단순작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개인서비스 업종에 몰려들고 외국인 근로자와 불법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10년 뒤 임금이 가장 많이 오를 직종’을 보자. 컴퓨터 보안전문가, 해외영업 담당자, 생명과학 연구원, 디자인 종사자 등이다. 상징분석과 관련된 일자리로 대부분 기업이 제공한다. 반대로 ‘10년 뒤 임금이 가장 많이 하락할 직종’은 노점 및 이동판매원, 주유원, 농어업 관련 단순노무자 등이다. 개인서비스 일자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글로벌화가 더 진행되면 우리나라 노동시장도 미국처럼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일자리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좋은 교육을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지식근로자를 양산하고 이들을 고용할 일류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에 소개된 ‘입사 선호 1위 기업’의 공통점은 상징분석과 관련되는 일자리를 많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고임금 일자리다.

철강업종 1위 포스코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하는 집단’으로 탈바꿈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모든 직원이 ‘상징분석 작업’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통신업종 1위인 SK텔레콤은 ‘구성원의 두뇌 활용까지 관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런 목표가 성공하면 직원들은 지식근로자로서 더 많은 임금을 받고 회사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

현 정부처럼 기업 돈을 뜯어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세금으로 만든 사회적 일자리는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저임금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중한 세금 탓에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고임금 일자리가 줄어든다.

차기 정권은 ‘입사하고 싶은 기업’을 많이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하기 바란다. 이런 기업이 많아져야 고임금 근로자도 늘어나고 나라도 부유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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