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무샤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전 대법원장이 12일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를 방문하면서 촉발됐다. 그를 초청한 ‘파키스탄 인민당(PPP)’ 등 야당 세력과 친정부 정당 ‘무타히다 민족정당(MQM)’ 지지자들 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진 것. 차우드리 대법원장은 집회 참석을 포기하고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갔지만 무장 대치한 양 진영은 주말 내내 카라치 전역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이번 사태로 42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부상했으며 법원 등 관공서와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올 3월 차우드리 전 대법원장 해임 후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과 반정부단체는 이번 유혈사태를 계기로 거국적인 무샤라프 퇴진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6개 이슬람 정당 연합체인 ‘무타히다 마질리 이 아말(MMA)’ 지도자인 하피즈 후세인 아메드는 14일 “모든 국민이 만장일치로 정부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군부 입김이 센 라호르 지역에서는 인권 운동가와 변호사, 야당 지도자들이 포함된 8000여 명의 시위대가 ‘무샤라프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군인들을 다수 배출한 라호르에서 시위 진압을 위한 발포가 이뤄질 경우 군인들의 동요로 이어지면서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대통령의 군부 내 입지가 급속히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차우드리 대법원장을 해임한 것은 헌법 개정을 노린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올 11월로 임기가 끝나는 무샤라프 대통령은 임기 연장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해 올 연말 선거에서 재집권을 시도하고 있다. 당초 그는 권력 남용 등의 혐의를 붙여 차우드리 대법원장을 해임했다고 주장했지만 야당은 임기 연장을 위한 법적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그를 해임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13일 “계엄령 선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카라치 지역에는 3000명의 추가 병력이 속속 배치되고 있다. 카라치 경찰국장은 “군은 법질서를 해치는 세력에 대해서는 발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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