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이미 할말은 다 했으니…” 李 “姜대표 흔들지 말라더니”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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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좌), 박근혜(우).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명박(좌), 박근혜(우).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나라당의 내홍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11일 자신의 경선 룰 중재안으로 빚어진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자리’를 건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중재안에 반발하는 박근혜 전 대표는 장고에 들어갔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이날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는 ‘친(親)박근혜’ 당원들이 ‘중재안 무효’를 주장하며 당사 진입을 시도하다 경비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15일까지 경선 룰에 합의하지 못하면 상임전국위원회에서 1차 표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다. 당헌 개정안이 상임전국위를 통과하더라도 전국위원회에서의 2차 표 대결로 이어질 경우 한나라당의 내분은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1일 공식 일정 없이 지인들과 만났다. 주말에도 자택에 머물 예정이다.

오전 11시 반쯤 개인 오찬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던 박 전 대표는 ‘생각을 정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뭘요…”라며 답변을 피했다.

박 전 대표가 사흘간 공식 행보를 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내에서는 “정치적 결단에 앞서 칩거하면서 장고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박 전 대표가 전날 경선 불참 시사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현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는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확고 불변한 뜻이 있기 때문에 칩거하고 장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 캠프도 이날 하루 매우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이미 모든 말을 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말을 아끼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캠프 내부적으로는 강재섭 대표 중재안 처리를 놓고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의 표 대결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중재안이 통과되지 않고 강 대표가 물러날 경우와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책도 점검했다.

캠프 내에서는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 박 전 대표가 마지막 승부카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캠프 측은 강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 시장 측에서 경선 룰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여론조사 반영 비율 산정시) ‘비당원 투표율 67% 보장안’을 빼고 합의하자는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박 전 대표가 강 대표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헌 개정안이 통과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헌 개정안 발의권을 갖고 있는 상임전국위 의장인 김학원 의원이 “대선주자 간의 합의 없이는 중재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중립 인사들도 “강 대표의 중재안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박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던 전여옥 의원은 이날 “당초 합의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박 전 대표의 원칙론을 지지한다”며 “박 전 대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친(親)이명박’ 성향의 배일도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 전 대표의 주장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의원도 10일 중재안에 대해 “만석꾼(이 전 시장)이 쌀 한 톨을 더 가지려는 것”이라며 박 전 대표를 두둔했다. 중립을 자처하는 한 초선의원은 “누가 뭐래도 박 전 대표는 쓰러져 가는 당을 구한 사람”이라며 “여론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는 그에게 불리한 경선 룰까지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촬영 : 이종승 기자

▼이명박 “姜대표 흔들지 말라더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1일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판문점을 찾았다.

이 전 시장은 판문점에서 비무장지대(DMZ)에 숙박시설을 세우고 그 안에 이산가족 상봉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생태공원은 물론 남북한 청소년들이 자주 만나 축구 경기와 각종 공연을 벌일 수 있도록 체육관과 공연장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경선 룰을 둘러싼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이 전 시장은 “불과 1주일 전에 박 전 대표가 저를 향해 당을 흔들지 말고, 강재섭 대표를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줘서 조건 없이 당의 안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당의 단합과 화합을 이뤄 내는 게 이 시점에 (두 주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의 ‘1000표 줄 테니 기존 룰대로 하자’는 발언에 대해서는 “기도 안 차서…”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박 전 대표와의 대치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얘기도 했다.

자신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식당에서 “냉면으로 통일하지”라는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일화를 소개하며 “북한 식당 아주머니가 ‘신성한 통일이라는 단어 앞에 어떻게 냉면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느냐’고 따졌다. 말이 안 통하면 그런 일이 생긴다”고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공동경비구역(JSA)에 들어가기 직전 “남측 지역에 북한 초소 3곳을 허용해 줘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설명을 듣고는 “양보만 하니까 그렇지. 무고한 사람만 죽고…”라며 여운을 남겼다.

판문점=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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