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추락 부시 정권의 고위 정무직들 “내 살길은 내가…”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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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H 로펌 파트너들은 요즘 경력직 변호사 채용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중간간부로 일한 몇몇 변호사들이 전직 희망을 간접 표명해 왔기 때문. “정권 말기에 현직 고위 공무원의 채용을 놓고 파트너들 간 열띤 토론이 벌어집니다. 현직 프리미엄에 대한 고려가 없을 순 없지만, 권력의 끈 때문에 누군가의 부탁으로 덥석 채용한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실적이 나쁘면 손해 아닙니까.”(워싱턴 대형 로펌 출신 K 변호사) 부시 행정부의 임기는 아직 20개월 남았지만 요즘 워싱턴은 행정부 정무직들의 엑소더스로 시끌시끌하다. 올해 들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 라인에서만 핵심 요직을 떠난 고위직 인사가 줄잡아 20명을 넘는다.》

▽잇따른 고위직 사임=백악관의 경우 국가안보회의(NSC) 잭 크라우치 부보좌관을 비롯해 이라크 문제를 담당해 온 또 다른 NSC 부보좌관 메건 오설리번, 러시아 담당 톰 그레이엄 국장, 빅터 차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 등이 최근 사임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이 물러난 이래 스티븐 캠번 정보국장, 피터 로드먼 차관보, 프랜시스 하비 육군장관 등 핵심 간부들이 타의에 의해 떠났다. 한반도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담당해 온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도 7월에 사임한다.

국무부는 지난 6개월간 국장급 이상만도 12명이 떠나 고위직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더욱이 이런 자리는 후임자 찾기가 워낙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신원 조회에 6개월 이상 걸리는 바람에 민간인 출신 채용이 어렵고, 그 결과 최적임자란 확신 없이 정부 내부에서 데려오는 경우도 빚어진다고 한다.

이 같은 이직 현상은 우선 2008년 대통령 선거가 1920년 이래 현역 대통령·부통령이 모두 출마하지 않는 첫 선거라는 점에 근거한다. 공화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설사 재집권하더라도 새 술과 새 자루가 마련될 게 뻔한 상황인 것.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쟁의 영향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서 헤매는 ‘실패한 행정부’에서 발을 빼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대통령이 임명하는 3000명 정도의 정치적 임명직이 행정부를 떠나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는 실증적 분석도 있다.

스티븐 웨인(행정학) 조지타운대 교수는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1990년대 이후 미 대통령이 임명한 정무직 종사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자리 이동을 실증 조사한 결과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8개월이었다”고 했다. 이 수치는 행정부 관리가 내부 승진을 했을 때는 근무 기간을 새롭게 계산한 결과다. 따라서 실제 공직자가 행정부에 머문 기간은 다소 길어질 수 있다.

폴 라이트(정부학) 뉴욕대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럼에도) 이직 규모가 과거 정부에 비해 크며, 6개월 이상 빨리 찾아왔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권의 끈에 기대지 않는다”=2001년 초가을 휴 셸턴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 공군대장(훗날 합참의장) 등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모처에 모여 8시간을 함께 지냈다. 대단한 군사전략 회의가 아니었다. 미래에 어떻게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가, 대기업 이사회에 진출해 어떤 보수를 요구해야 할지를 다른 국방부 관리에게 교육받는 자리였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 이런 사실을 보도하자 “이렇게까지 앞날을 챙기느냐”는 부정적 여론이 일었었다.

미국에서 정무직 간부들의 전직(轉職) 과정 및 전직 후 행적은 엄밀한 감시의 대상이다.

백악관 교육보좌관으로 부시 행정부 교육정책의 근간인 ‘낙제학생 방지(No Child Left Behind)’ 프로젝트를 사실상 설계한 알렉산더 크레스 씨는 사임 후 대형 로펌인 애킨검프에 들어가 교육 담당 로비스트로 활동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전체 정무직 가운데 극히 일부에 제한된다고 보는 게 맞다. 최근 스스로 사임한 고위직들도 원직인 대학교수로 복귀한 경우를 빼면 투자은행, 로펌, 로비회사, 싱크탱크 등 경쟁이 치열한 민간부문에서 새 일자리를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10일 인터뷰에서 “주니어급은 상대적으로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시니어급 공무원들은 민간부문에서의 새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며 “하지만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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