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 56년만에 분계선 넘어 달린다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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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끝난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정승조 남측 수석대표(왼쪽)와 김영철 북측 수석대표가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잠정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11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끝난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정승조 남측 수석대표(왼쪽)와 김영철 북측 수석대표가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잠정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 선로가 폭격으로 끊어지면서 발이 묶였던 철마(鐵馬)가 56년 만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북과 남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남북한은 11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속개된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17일 열리는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잠정합의서’에 서명했다.

남북은 또 7월 중 제6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고 서해상 충돌 방지와 공동 어로수역 설정, 남북 철도·도로 통행을 위한 항구적 군사보장 조치 문제를 계속 협의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5개 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은 2000년 9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제2차 국방장관 회담을 이른 시일 내에 개최토록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동보도문엔 해주항을 출항한 북한 선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가로질러 서해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항 직항로 개설 문제를 계속 논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은 8일부터 일정을 하루 넘겨 11일까지 열린 이번 회담 내내 서해 NLL의 무력화를 노린 새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북한은 또 회담 기간에 북한에서 제3국으로 직행하는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남측이 반대해 공동보도문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남북해운합의서는 북한에서 제3국으로 직행하는 선박은 제주 항로를 이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시험운행 어떻게?=군사보장 합의에 따라 열차 시험운행이 실시되는 곳은 △경의선(27.3km) 문산∼도라산∼판문∼손하∼개성역 △동해선(25.5km) 제진∼감호∼삼일포∼금강산역 구간이다.

경의선의 경우 17일 오전 11시 반 남측 문산역에서 북으로, 동해선의 경우 같은 시간 북측 금강산역에서 남측으로 운행된다. 역사적인 군사분계선(MDL) 통과 시간은 낮 12시 20분경이다.

열차 출발 직전 경의선에선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북측 장관급회담 수석대표가, 동해선에선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북측 김용삼 철도상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공동 기념식이 열린다.

▽일회성 보장=하지만 이번 시험운행은 단 하루만 유효한 일회성 군사보장에 의한 것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잠정합의서에도 군사분계선을 ‘17일 9시부터 17시까지 임시로 개방한다’고 돼 있다.

경의선 열차의 경우 시험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현재 1만3000여 명에 이르는 북측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출퇴근 수단으로 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남북 철도연결사업은 2000년 7월 제1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하면서 본격화됐다. 2002년 9월에는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착공식이 동시에 열렸다.

철도의 재연결에 투입된 비용은 남측 구간 선로 및 노반 정비에 3645억 원, 북측 구간에 대한 자재·장비 제공비 1800억 원 등 약 5445억 원이다.

남북은 그동안 철도 시험운행에 여러 차례 합의했으나 북측 군부의 반대로 실제론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남북은 2004년 3월 제8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올해 안에 가능한 구간에서 철도 시험운행을 진행한다’고 합의했다. 지난해 5월 25일에도 시험운행 일자와 구체적인 행사 계획에 합의했지만 하루 전날 북측이 군사보장 미비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북측, 서해 NLL 무력화 의도 여전=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철 중장(한국군 소장에 해당)은 회담 종결 발언에서 “서해 NLL은 ‘강도가 그은 선’이며 서해상 충돌 방지와 공동 어로 실현을 위해선 첫째, 둘째, 셋째도 해상분계선 문제”라며 NLL 무력화 의도를 드러냈다.

그는 또 “허비한 시간에 비해 너무 결실이 없었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회담이었다”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군사 연습으로 회담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된다”고 남측을 비난했다.

북측이 북한 선박의 해주항 직항 문제 협의를 공동보도문에 포함하도록 요구한 것도 NLL 문제를 건드려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현재 해주항 앞바다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남한 선박은 서해 NLL을 통과해 해주와 인천항을 직항으로 오가지만, 해주항을 출항해 서해로 드나드는 북한 선박은 NLL 이북의 백령도 해상을 돌아 운항해야 한다.

해주항 직항이 실현되면 북한 선박은 연평도와 인천 앞바다 사이의 NLL을 가로질러 남측 서해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해주항 직항로는 남북 경제 활성화와 서해 긴장 완화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지만 북한으로선 NLL 무력화를 위한 도구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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