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고향을 찾아서]<2>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영국 옥스퍼드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1분


코멘트
관광객들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메도 빌딩. 템스 강변의 목초지로 통하는 출구이기도 하다. 루이스 캐럴과 앨리스가 템스 강으로 보트를 타러 갈 때 이용하지 않았을까.
관광객들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메도 빌딩. 템스 강변의 목초지로 통하는 출구이기도 하다. 루이스 캐럴과 앨리스가 템스 강으로 보트를 타러 갈 때 이용하지 않았을까.
교수 휴게실 문이 앨리스의 ‘토끼굴’

영국의 대학 도시 옥스퍼드는 꿈의 도시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토머스 하디의 ‘비운의 주드’)에게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곳 출신이 쓴 빅토리아 시대의 동화책 한 권이 옥스퍼드를 난센스와 판타지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여기는 영국이 아니라 크라이스트처치입니다.”

옥스퍼드대에서 유일하게 중산모를 쓰는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수위는 이같이 말한다(독일의 미술비평가 페터 자거·‘옥스퍼드 & 케임브리지’·갑인공방). 13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하고 규모 역시 칼리지 중 가장 크다는 자부심을 나타낸 것이다.

어쨌든 입장료까지 내는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들어서자 신고딕 양식(1640년 건립)의 분위기가 관광객을 매료한다. 이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책 두 권이 나왔다. 이성에 관한 대표적인 책이 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이라면 난센스와 판타지에 관한 대표적인 책으로는 루이스 캐럴(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꼽힌다. 후자는 캐럴의 또 다른 책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영국 문학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에 이어 두 번째로 자주 인용된다.

1865년에 발표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칼리지의 수학과 교수(lecturer)였던 캐럴이 학장인 헨리 리델의 어린 딸 3명과 템스 강에서 보트를 타고 놀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둘째 딸 앨리스는 누구보다 캐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무척 좋아했다.

옛 도서관을 지나 홀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있는 선형궁륭의 천장에 관광객들은 또다시 압도된다. 그러나 계단 아래서 사람들은 오후 2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홀은 칼리지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이 홀은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대강당으로 나왔다.

“저기 저 위에 있는 것이 조끼 입은 흰 토끼이고 그 옆에 있는 것이 가짜 거북이야.”

키 큰 남자 관광객이 어린 아들을 번쩍 들어 안고 손가락으로 ‘앨리스 창’을 가리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티브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돼 있다.

홀엔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 놓은 긴 참나무 식탁과 등받이가 높은 신고딕식 의자들이 가득하다. 접시에는 칼리지의 문양인 추기경 모자가 그려져 있다.

이 칼리지가 배출한 인사들의 초상화 담긴 금빛 액자가 빙 돌아가며 걸려 있는데 입구 바로 오른쪽에 있는 것이 루이스 캐럴의 초상화다. 마치 미니 내셔널 갤러리 같다.

초상화들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이 있다. 교수 휴게실인 시니어 코먼 룸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이다. 이것이 바로 앨리스가 흰 토끼를 쫓아가다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게 되는 ‘토끼 굴’이라는 설명도 있다.

앨리스는 계속 밑으로 떨어진다. “이러다가 지구를 뚫고 지나가는 건 아닌지 몰라! 머리로 걷는 사람들 틈에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웃길까! 그걸 ‘대추점’(이번에는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아서 기뻤다. 제대로 말한 것 같지 않아서였다)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비룡소)

앨리스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대척점’(antipodes)을 ‘antipathies’라고 잘못 말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간된 책들은 이 말을 ‘대추점’을 비롯해 ‘극척점’(시공주니어) ‘대립점’(베틀북)이라고 각각 번역했으며 ‘혐오감’(책세상)이라고 직역한 경우도 있다.

가장 읽기 쉽게 번역했다는 평을 듣는 김경미 씨는 “이 이야기에는 말장난이 많다”고 말한다. 제임스 조이스에게서 ‘현대문학의 대부(代父)’라는 칭송을 받은 캐럴인 만큼 책 속에는 언어적 유희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번역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앨리스의 모험은 언어적 실험의 연속이다. 여기에 캐럴은 근엄한 교수 세계에 대한 패러디를 잊지 않는다. 앨리스의 눈과 입을 통해 어른 세계의 관습은 해체되고 난센스가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보들리언 도서관을 지나 조금 걸으면 공룡 이구아노돈이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한 자세로 몸을 곧추세우고 방문객을 맞는 대학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 박물관 전시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1683년 들어온 도도새 표본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도, 도, 도지슨”이라고 말을 더듬었던 캐럴은 이 멸종된 새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책에도 등장시킨다.

■ 찾아가는 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