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록]TV 나가서 집안싸움 하는 한나라당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1분


코멘트
“그렇게 합리적인 방안을 왜 이제 와서 주장합니까.”(유승민 의원)

“무슨 말씀입니까. 일관되게 주장해 온 내용입니다.”(박형준 의원)

“저는 처음 들었는데요.”(홍준표 의원)

11일 한나라당 ‘경선 룰’ 논란을 주제로 진행된 MBC TV 토론 프로그램에선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의원들이 갑자기 타협점을 찾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인 박 의원이 논란의 핵심인 여론조사 반영 비율과 관련해 “여론조사 무응답자는 투표의 기권처럼 제외한 뒤 득표수를 환산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에 지난해 당 혁신위원장으로 현재의 경선 룰을 만든 홍 의원이 “그런 방식이라면 합리적이고 의미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중재안의 정당성을 설명하러 나온 나경원 대변인도 “상당히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 의원조차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경선준비위원회 합의 과정 때 말하지 않고 뒤늦게 주장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박 의원이 “경준위 때부터 줄곧 주장해 온 내용”이라고 반박하자 유 의원은 “합리적이라고 해도 경준위 합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을 뺐다.

‘표의 등가성(等價性)’이니 ‘가중 평균’이니 하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으며 싸우던 의원들이 정작 핵심 쟁점에 대한 상대의 주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경선 룰에 대한 지루한 싸움으로 국민께 창피하다”면서도 토론이 끝날 때까지 계속 싸웠다.

한나라당 경선 방식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시청자들이 이 토론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다수 국민은 한나라당 경선 룰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과연 정권을 맡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방송에 나와 집안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수권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 지금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이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국민적인 관심사도 아니고 국민 생활과도 관계없는 집안싸움을 왜 방송으로 끌고 나가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나왔겠는가.

이상록 정치부 myzod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