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조정/‘관골에 꽃물 든’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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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여든여덟 살 잡수신 이로

고기는 쉽게 못 잡수시는 아버님

간데없으시다

서빙하는 젊은 여자였다

낙과가 태반인 우리 집 감나무 거름으로 쓸 갈비 뼈다귀 한 봉다리 가져와서

아버님 눈에 제 눈을 썩, 맞추는데

감 열면 저도 주세요오

교태가 자르르르 흘러

맺히지도 않은 올여름 감꼭지가 사뭇 단단해지는데

아찔한 이마를 드니

아버님 간데없으시고

관골에 꽃물 든

내 아들

예쁘게 예쁘게 내 앞에 앉아 계셨다

냉면 사발을 치켜들고 남은 국물을 마시는

코끝이 싸하다

나는 냉면에 겨자를 너무 많이 푸는 편이다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실천문학사) 중에서》

애써 겨자 탓 둘러대지만 코끝 싸한 게 그 때문만이 아님을 뉘라서 모를까. 온 산하 대지에 봄꽃은 빠짐없이 출석하였으나 저 집 밥상 앞에 올봄부터 수저 한 벌 줄었구나. 해수 기침 사라진 아랫목이 자꾸만 허퉁하다. 호호백발에 이는 몇 대 무너졌어도 짓궂은 여인네 수작에 소년처럼 광대뼈 꽃물 들더니, 감 따주러 미리 가을로 가 장대 들고 기다리시는가. 열댓 살 손자 볼에 겹친 아버님, 홀연 간데없으시다. 날빛은 저리도 고운 봄날에 낙화는 눈보라처럼 휘날리누나. 우리 모두 온 데 없이 와서 간데없이 간다고 훨훨.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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