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하버드 졸업장 쥐고도 쫓겨나는 美유학생들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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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버드대 졸업생 중 외국인 학생은 사실상 대부분이 추방 명령장을 받았다. 이들이 졸업 후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는 게 불가능해졌다.”

하버드대 대학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은 지난달 사설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전하면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미국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를 졸업해도 외국인 유학생들의 미국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은 비자 때문.

외국인 유학생들은 보통 미국에서 취업할 때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선택한다. 그런데 올해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가 4월 초 신청을 받자마자 하루 만에 소진됐다. 올해 쿼터는 6만5000명. 그런데 신청을 받은 지 하루 만에 두 배인 13만3000명이 몰렸다.

쿼터가 한 해에 19만5000명이었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 쿼터가 6만5000명으로 줄어들면서 전문직 취업비자 대란이 본격화됐고, 올해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

뉴욕의 아시아계 전문 리크루트 업체인 ADI 안진오 사장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면 미국에서 취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유학생들은 졸업 후 1년 기한 직업실습비자(OPT)를 받아 일하면서 쿼터가 늘어날 가능성을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실리콘밸리 인력의 절반은 외국 출신. ‘실리콘밸리는 IC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조크가 있을 정도다. 여기에서 ‘IC’는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의 약자가 아니라 인도인(Indians)과 중국인(Chinese)의 앞 글자를 딴 것.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은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축소로 미국 경쟁력에 비상이 걸렸다”며 의회를 상대로 쿼터를 늘리기 위한 로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외국인들이 미국 내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정서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아직까지 소극적인 자세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똑똑한 두뇌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높여 온 개방사회 미국이 노동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보호주의 물결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하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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