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부와의 똑똑한 결별

  • 입력 2007년 5월 10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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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문은 재미로 봐야 한다. 나도 재미 삼아 가끔 본다”던 대통령 얘기가 아니다. 전담 직원이 스크랩해 준 업계 뉴스만 훑어보기에도 이들은 너무 바쁘다. 경선 룰 속의 숫자나, 지역당이냐 통합당이냐로 골치 썩기엔 세상이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있다.

세계화 속의 밴댕이 정치판

주로 잘나가는 국내외 기업이나 전문직종에서 뛰는 사람들의 비즈니스는 국내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정치권에선 가끔 민생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이들의 ‘경제’는 잘되고 있다. 3불(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 정책도 상관없다. 정 안 되면 유학 보내면 그만이다. 국민연금 개혁? 노후는 각자 책임지는 것 아닌가?

참여정부는 이런 상황을 ‘양극화’로 간단하게 규정했다. 잘난 이들에게 징벌성 세금을 더 걷어 고루 나눠 주는 게 이 정부의 해법이다. 나라의 밥솥 크기가 고정돼 있으니 누구도 더 먹어선 안 된다는 논리다.

미안하게도 세계의 밥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럽과 일본의 경제 부흥과 함께 1950∼73년 세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9%나 됐는데 2000년 이후엔 3.2%씩 쑥쑥 성장했다. 세계 최대 갑부 빌 게이츠의 재산이 2년 만에 20% 늘었지만 세계의 빈곤 인구도 2년 만에 10%인 1억 명이 줄었다. 빌 게이츠가 부자가 된 건 이들의 밥을 뺏어서가 아니라 세계화와 정보화 덕이 크다.

세계화 정보화도 2000년 이후엔 차원이 달라졌다. “제3의 산업혁명, 오프쇼링(offshoring)이 시작됐다”는 게 지난해 미국 포린어페어스지에 실린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의 주장이다. 18세기 말 첫 산업혁명, 1960년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한 두 번째 산업혁명에 이어, 이젠 정보화를 이용해 고급 서비스까지 교역하는 세 번째 산업혁명 시대라는 거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동유럽이 세계화에 편입되면서 저임금 노동력이 두 배로 급증했다. 임금 경쟁에선 이들을 이길 수 없다. 독일의 강성 노조도 힘을 잃은 이유다. 반면 제3의 산업혁명을 타고 금융 회계 법률 의료서비스에다 테크놀로지까지 결합한 고부가가치 시장과 수요는 커졌다. 지식과 기술, 자본에 대한 대가도 부가가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도 가만 보면 지식과 기술을 무기로, 정보화를 수단으로, 세계 시장에서 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흔들리지 않는 디커플링(decoupling) 모드로 전환됐다. 국내 외국인투자 기업의 노동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이 토종 기업보다 크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24시간 세계를 주시하는 글로벌 인재의 눈에 이 작은 나라에서 당내 경선을 놓고 박이(朴-李) 터지게 싸우거나, 지역주의냐 대통합이냐를 놓고 얼굴 붉히는 건 그 밥에 그 나물일 뿐이다.

정치권이 못해도 국민은 한다

괴로운 쪽은 어떤 정권이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선진국 정부는 글로벌 기업과 인재를 더 키우려고 무섭게 개혁 중인데 우리 정부는 반대로만 달렸다. 범여권이 100만 번 당명(黨名) 세탁을 한대도 시대착오적 정책으로 보통 국민을 고생시킨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 우파 야당 내부의 싸움질을 보면 재수(再修), 삼수(三修)를 해도 할 수 없다 싶다.

제3의 산업혁명 시대엔 정권이 시장을 괴롭힐 순 있어도 장벽은 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오프쇼링 되는 일을 도맡고 있는 인도의 세계적 기업들도 사회주의 정권 시절 유학 가서 공부한 ‘똑똑이’들이 인도가 시장경제로 돌아선 뒤 귀국해 세운 기업들이다. 정부보다 현명한 부모라면 뼈는 빠지더라도 사교육비에 유학 비용까지 대줘 자식들의 경쟁력을 키워 주는 수밖에 없다. 힘없는 기업이나 자영업자도 ‘관존민비(官尊民卑)’ 네 글자를 되새기며 어떻게든 살아남아 세계 시장에서 겨뤄야 한다. 힘은 들겠지만 그게 남는 장사다. 우리 국민의 임기는 어떤 정권보다도 길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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