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 기술유출 피해액 국내 사상 최대 규모

  • 입력 2007년 5월 10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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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 전현직 직원들이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바람에 입게 된 피해액은 세계시장 기준으로 22조 원대(회사 측 추산). 국내 기술 유출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까지 관련자들이 e메일 등으로 쉽게 정보를 빼낸 것은 물론이고 공장 내부까지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사실이 드러나 회사 역시 허술한 보안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5년 노하우가 빠져 나가=전현직 직원 등이 공모해 중국에 넘긴 현대기아차 기술의 주요 내용은 이 회사가 25년간 노하우를 축적해온 '신차품질보증시스템'과 '금형공장 설비배치도', '신차개발일정' 등 총 57건이다.

회사 측은 이 기술 유출로 중국시장에서 자사 자동차 판매량이 10%가량 잠식될 것으로 추정했고 세계적으로는 82만여 대 판매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중요한 기술이었지만 현직 생산직원인 이모(구속) 씨 등 2명은 손쉽게 회사 기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들은 생산현장에 설치된 컴퓨터에 USB를 꽂아 자동차컨설팅 회사인 A사 팀장으로 이직한 윤모(44·구속) 씨로부터 청탁받은 정보를 내려받았다.

유출한 정보 중 차체 용접, 조립 기술은 자동차의 내구성과 안전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부 업체와 교류하지 않고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관리하는 중요 기술. 한국은 이 분야에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신차품질보증시스템은 신차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기획단계에서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과 각 조직이 수행해야 할 업무와 책임이 1개월 단위로 상세히 기록된 경영상 기밀이다. 생산에 가장 효과적인 프레스 기계 배치를 담은 도면은 현대기아차 화성 금형공장에서 중국 J사에 e메일로 보내졌다. 현대기아차가 2009년까지 생산할 예정인 11대의 신차에 대한 생산 및 판매, 판로 등이 기재된 영업비밀도 유출됐다.

▽사라진 애국심=검찰조사 결과 A사는 중국 C사의 컨설팅 용역을 딴 일본의 또 다른 회사로부터 일부 용역을 재수주하면서 기술을 빼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윤 씨 등 A사 직원들은 빼 낸 생산 기술을 들고 직접 중국의 C자동차사 공장으로 날아가 석 달가량 머물며 기술지도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윤 씨 등 구속된 A사 직원 3명은 회사가 챙긴 2억3000만 원 중 8000만 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이들은 C사에 넘겨준 9건 외의 또 다른 기밀을 중국 J사에 팔기 위해 접촉한 뒤 윤 씨를 파견이사로 보내 정보를 넘겨주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4월20일 중국으로 출국하려던 윤 씨는 첩보를 입수한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수사로 출국 전날 체포됐다.

▽허술한 보안= 검찰은 국내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들이 거대한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때문에 많은 생산직원들이 제조, 영업 기술과 관련한 전산망에 쉽게 접근하도록 허용하고 있어 기술 유출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보안만 허술했던 것은 아니었다.

검찰조사 결과 구속된 A사의 윤 씨는 지난해 6월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퇴직 당했지만 올해 2월 현직 후배인 지모(29·구속) 씨의 안내를 받아 쉽게 공장 내부로 들어가 필요한 생산라인 정보를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협력사 직원으로 위장한 독일의 모 자동차부품업체 기술진도 현직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될 내부 시설을 견학한 사실이 확인됐다.

▽뒤늦은 보안 강화=현대기아차 측은 사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이 내용을 감지하고 검찰에 통보해 수사가 본격화하자 뒤늦게 E-DRM(문서 보안 솔루션)을 확대 적용하는 등 사내 컴퓨터의 보안프로그램을 강화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현대기아차가 연구소는 물론 최근 증축한 본사에도 각종 보안장치를 강화해 중요 문서가 담긴 메모리카드 등의 밀반출을 차단하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보안 장치를 강화해도 마음먹고 빼돌리는 데는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며 "일단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본 뒤 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이종식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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