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국민 참여’와 ‘국민 고문’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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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후보들은 여한 없이 싸웠다. 특히 당선자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결선 상대 세골렌 루아얄은 유권자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고 모든 것을 주장하는 기회를 누렸다. 두 차례 거푸 겨뤄 승패가 갈렸으니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깨끗하고 확실한’ 승부였다.

후보도 유권자도 최선 다한 프랑스

프랑스 유권자들도 유감없이 할 일을 다 했다. 놀기 좋아하는 프랑스인이 4월과 5월 화창한 일요일, 만사를 제쳐 두고 두 번씩이나 투표장으로 몰려갔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은 83.77%, 결선 투표의 투표율은 더 높아진 83.97%. 2002년 한국의 대선 투표율이 70.8%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프랑스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열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장래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의지가 투표장을 민주주의의 출발지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져 유권자들은 표가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뽑는 사람이나 뽑힌 사람이나 앙금이 남을 수 없는 시원한 잔치판이었다. 이보다 확실한 ‘국민 참여’는 없다. 적어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프랑스가 만들어 갈 모습에 대해 국민과 사르코지 당선자는 공동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런 프랑스 대선에 한국은 전례 없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멀리 떨어진 유럽 나라의 대선에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프랑스 대선을 통해 7개월 뒤로 다가온 우리나라의 대선을 가늠하려는 ‘특수(特需)’ 때문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올 대선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우선 한 정파가 장기 집권을 했다는 점이 같다. 프랑스는 우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12년을 재임했다. 한국은 좌파 대통령 2명의 10년 연속 집권 이후 새 지도자를 뽑는다. 여성 후보 루아얄이 강력한 경쟁자로 나선 프랑스처럼 한국에도 박근혜 후보가 유력 주자로 등장했다. 대통령의 임기도 똑같이 5년이다. 이 같은 유사점이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대선은 상식적 결론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파가 장기 집권했으니 이번에는 좌파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정권교체론은 먹히지 않았다. 여성 후보의 등장에 감격한 여성 유권자들이 루아얄에게 몰표를 주는 성적인 투표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아얄(29%)이 사르코지(32%)보다 여성 표를 적게 얻었다.

이런 결과는 한국 유권자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러나 주어진 여건을 놓고 7개월 뒤를 전망하기에는 한국의 현실이 너무 아득하다. 도대체 누가 누구와 무슨 공약을 놓고 맞붙을지 오리무중이 아닌가.

싸움질에 여념 없는 대한민국

현재로선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 두 사람은 경선 룰을 놓고 상식 이하의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 싸움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집권 세력 쪽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불과 4년 전에 만들어진 집권당 열린우리당이 쪼개진 것도 모자라 당을 사수하느니, 더 많은 의원을 끌어내 새 세력으로 뭉치느니 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결국 또다시 대선을 노린 급조 정당을 만들어 누군가를 벼락같이 내세워 유권자를 현혹하자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선거가 아니라 국민을 ‘고문’하는 것이다. 짜증과 우려를 넘어 정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싸움 끝에 어느 운 좋은 후보가 최후 승자가 된들 국민의 쓰린 가슴을 배려하며 5년을 집권하겠는가.

사르코지의 슬로건은 ‘함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Ensemble, tout devient possible)’였다. 한국 선거판은 ‘깨지고 갈라지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로 달려가는 것 같아 맥이 풀린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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