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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운동’ 원조 10년논쟁… 정읍-고창 ‘정통성’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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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운동’ 원조 10년논쟁… 정읍-고창 ‘정통성’ 줄다리기

입력 2007-05-09 03:00수정 2009-09-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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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올해로 예정된 동학농민운동 기념일 제정을 앞두고 전북 정읍시와 고창군 간에 첨예한 원조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신용하 교수 주장 후 시발점 논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동학의 시발점은 전북 정읍의 고부이다. 1894년 1월 10일(음력) 고부에서 탐관오리 조병갑의 처벌을 외치며 일어선 것은 동학농민운동에 불을 지핀 사건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1996년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가 정읍시가 주최한 갑오동학혁명 학술토론회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곳은 전북 고창군 무장”이라고 주장하면서 ‘시발점 논란’이 시작됐다.

이 논란은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부터 더욱 확대됐다.

국가 차원의 기념일 지정을 두고 2004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토론회가 열렸으나 양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결론짓지 못했다. 10일 정읍에서 네 번째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고부 원조설’을 주장하는 측은 ‘정통성’을 내세운다. ‘무장 기포(起包·동학농민운동 때 농민들이 동학의 조직인 포를 중심으로 봉기함)’는 ‘고부 봉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주장이다.

조광환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은 “현재 중고교 국사 교과서에도 고부가 동학농민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실려 있다”며 “고부에서 실패한 전봉준이 무장으로 이동해 일으킨 거사가 무장 기포라는 점, 고부 기포 때 동학 지도자 전봉준이 돌린 창의문에 ‘탐관오리 척결, 전주성 점령, 서울 입성’ 등 동학농민운동의 향후 목표가 나타났다는 점 등에서 정통성은 고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창 원조설’을 주장하는 측은 ‘실리론’을 내세운다. 실제로 우리가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농민군의 항쟁은 무장 기포에 가서야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배항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이전 고부 봉기 때는 전봉준이 창의문을 돌리며 활동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호응도 없었고 세력도 미약해 완전히 실패했다”며 “반면 두 달 후인 3월 20일(음력) 일어난 무장 기포 때는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 전북 동학의 주요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4000명의 농민군을 조직해 관군을 물리쳤고, 이런 점에서 진정한 동학농민운동의 시초는 ‘무장 기포’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자존심-정부 지원 겹쳐 팽팽

이렇게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데는 지역간 자존심뿐 아니라 정부 지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0년부터 시작되는 동학농민기념사업에 따라오는 지역 개발 및 지원 비용 등의 부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4월 23일 한 지역방송에 출연한 두 지역 대표는 ‘지역이기주의’라는 단어를 주고받는 등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2004년 특별법 제정 후 동학농민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는 난감할 뿐이다. 기념사업을 담당하는 유향옥 사무관은 “기념일이 빨리 지정돼야 예산을 확보하는데 2004년부터 계속된 원조 논란으로 현재 발목이 잡힌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심의위원회는 이번 4차 토론회의 결과를 지켜본 뒤 최종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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