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텔 결혼식에 축의금 5만 원 낼 수도 없고…’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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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구당 경조사비가 연간 51만 원으로 전년보다 12% 늘어났다. 작년 소득증가율 5%에 비해 갑절 이상 빠른 증가세다. 통계로 잡힌 증가세도 놀랍지만 현실의 체감(體感)부담은 훨씬 무겁다. 중산층의 경우에도 한 달에 수십만 원 지출 사례가 적지 않다. 경조사비가 상호부조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가계의 멍에’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해외 거주를 선택한 사람들에게서 “경조사비가 무서워 밖으로 나와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조금이 커진 큰 이유는 호화 결혼식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행세깨나 한다는 집에서는 호텔에서 결혼하는 풍조가 형성돼 있다. 힘에 부치는 가정에서도 주위의 눈을 의식해 호텔 결혼식을 올린다. 호텔 결혼식장에 가면 ‘적어도 밥값은 내야지’ 하는 부담감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자연스레 축의금이 10만 원에 이른다.

청첩장 남발도 문제다. 일본에서는 신랑신부 양가가 협의해 초청할 하객 수를 미리 정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만 고른다. 그래서 초청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반면 우리는 면식만 있으면 청첩장을 뿌린다. 이래서 ‘나도 냈으니 돌려받아야 한다’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장례식도 마찬가지. 고인(故人)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상주(喪主) 얼굴을 보려고 장례식장에 가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혼주나 상주의 사회적 지위나 가세(家勢)를 과시하는 행사가 돼 버렸다.

‘이런 관습이 소비를 진작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집집마다 유리창을 깨뜨리면 유리산업이 번성하고, 벽에 창문을 내지 못하도록 강제하면 발전업이 융성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과 비슷하다. 사실은 사치산업만 띄울 뿐 인적 물적 자원을 비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하고 낭비하는 측면이 있다.

건강하고 상식적인 생활을 위해 잘못된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1970년대의 ‘가정의례준칙’ 같은 강제적 방식으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국민생활운동을 통한 인식과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지도층과 여유 계층부터 호텔 결혼식과 부조금 받기를 자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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