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사랑받고 존경받는 재벌

  • 입력 2007년 5월 8일 19시 48분


코멘트
“자녀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물려주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려주지는 말라.”

세계 두 번째 부호로 꼽히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세상 부모들에게 들려주는 충고다. 버핏은 2남 1녀의 자녀들에게 유별나게 구두쇠처럼 굴었다. 딸 수지는 공항에서 주차료 20달러를 아버지에게 빌리면서 수표를 써 주어야 했다. 그녀는 좁은 부엌을 넓히기 위해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은행에 가서 보통 사람들처럼 대출을 받아라”는 대꾸를 들었다. 아들 하워드가 농장을 사고 싶다고 하자 버핏은 농장을 사서 아들에게 임대를 했다. 임대료는 농장 수익금의 1%였고 세금은 아들이 납부하는 조건이었다.

구두쇠 워런 버핏의 자녀 훈육법

자식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버핏의 훈육법이 항상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버핏은 상속세 폐지나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에 반대하지만 재산을 후대에 물려주려는 욕망이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활력소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말마따나 김 회장 개인 문제다. 그럼에도 김 회장 사건은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라는 기류에 실리면서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부 방송은 김 회장이 남대문경찰서에 벤츠S600을 타고 출두하는 모습을 반복해 방영했다. 재벌 회장이 벤츠S600을 타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중소기업인이나 자영업자 중에도 7억 원대의 벤츠 마이바흐를 타는 사람이 있다. 국산 자동차의 수출을 위해서도 국내 시장에서 외제차를 어느 정도 사 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 카메라가 벤츠S600의 번호판을 잡자 ‘1001’ 숫자가 화면을 채웠다. ‘1001’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통령 승용차의 번호판이다. 재벌 회장의 권력 콤플렉스를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각종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유달리 반기업 정서가 심한 편이다. “재벌 그룹 회장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하는 가슴 벅찬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젊은 경위의 발언도 반기업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반기업 정서의 뿌리에는 버핏처럼 모범적인 삶을 살며 사회 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기업가가 부족한 탓도 있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의 목적을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회 공헌인 것처럼 기술한 중고교 교과서가 많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기업의 사명을 주주를 위한 이익 창출이라는 좁은 비전에 가두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기업가가 적지 않다. 이른바 온정적 자본주의다.

검색 엔진 구글의 설립자들은 구글닷오르그(google.org)라는 자선 기관을 영리 법인으로 설립했다. 구글닷오르그는 빈곤, 질병, 지구온난화 퇴치를 위해 10억 달러의 종자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영리 추구 기업에 박애심도 필요

버핏은 40년 전 3만1500달러를 주고 매입한 집에서 지금도 그대로 산다. 동네 가게에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사 온 햄버거에 콜라로 곧잘 점심을 때우는 버핏이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30조 원에 가까운 310억 달러를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액의 기부였다. 버핏은 “내가 큰돈을 번 것은 사회와 시장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한다. 버핏의 사회 공헌 활동은 그가 돈을 벌도록 해 준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시장시스템을 보강하는 활동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썼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이기심 이상의 것에서 감동을 받는다. 기업가의 모범적인 삶과 자선 활동은 소비자의 호감을 높여 회사의 매출 증대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기업의 자선 행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버핏처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재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꿈을 팔아 기부금 모으는 총장(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물처럼 부드럽게 돌처럼 강하게(강신호 전경련 회장)
공민학교 소년이 법무부장관 되다(김성호 법무부장관)
늘 '처음처럼' 사는 은행원(신상훈 신한은행장)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영화배우 최은희)
변화하는 노동운동에 앞장선다(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야구도 인생도 숫자에 밝아야 성공한다(한화이글스 감독 김인식)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본다(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
경쟁력 있는 사학운영의 꿈(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은 기업에서 나온다(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11월 24일
쪽수 : 351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956
비고 : 판매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