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브 탤벗 “부시, 북핵폐기 협상 쉽게 포기 안할 것”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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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브 탤벗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이 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은 길고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폐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스트로브 탤벗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이 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은 길고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폐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기대를 높여 준 베이징(北京) 2·13합의 이행이 난항을 겪고 있다. 2·13합의는 대북 직접 협상을 강력히 주창해 온 미국 내 상대적 진보파의 목소리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물이다. 본보는 4일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스트로브 탤벗(61) 소장과의 인터뷰에서 진통을 겪는 현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대북 강경 목소리를 대표하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인터뷰(본보 4월 25일자 A10면)에 이은 ‘강온파 거두(巨頭)’ 인터뷰 2탄이다.》

“인생은 어려운 선택으로 가득하며, 외교는 더더욱 그렇다.”

탤벗 소장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됐던 북한의 불법 자금이 전액 반환되는 것은 원칙 훼손이란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처럼 대답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것보다 협상 과정에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3합의 3개월을 앞두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서 ‘인내심이 소진되어 간다’는 말이 들린다.

“나는 부시 행정부의 내부 논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최근 부시 행정부의 협상 태도에서 ‘북한 핵 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는 분명하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결심 및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런 협상의지를 외부세계에 전달하고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안 하는 것보다 좋다. 부시 대통령이 ‘더는 안 되겠다. (북핵 협상 추진을) 포기하겠다’고 나오진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하루빨리 자신의 의무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시 행정부 정책이 180도 돌변했다. 원칙 지키기와 협상의 유연성은 어떻게 조율해야 하나.

“인생은 어려운 선택, 즉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로 가득 차 있다. 외교 협상은 더더욱 그렇다. 타협이 절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첫 4년 동안 외교와 협상에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 및 중동 문제에서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남긴 유산을 방치했다. 외교란 타협인데, 부시 행정부가 이 점에 약했다. 북한이 협상을 끌어오다가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한 것도 이런 부시 행정부의 비타협적 태도가 일정 역할을 했다고 본다.”

―1998년 인도 및 파키스탄 핵실험 후 국무부 부장관으로서 사후대책을 맡았다.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하면서 사실상의 핵 국가인 제2의 파키스탄이 될 우려는 없나.

“낙관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핵 포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게 북한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의 이해와 맞는다. 중국도 도울 것이다. 단, 아주 길고도 어려운 과정이 남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이 물러나고 있다.

“네오콘 이론가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냉전 종식 직후인 1990년대 초 ‘일극체제의 순간(unipolar moment)’이란 표현을 만들었다. 미국이 냉전 승리로 압도적 1등 국가가 됐다는 말이다. 그런 순간은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제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다. 이라크전쟁 및 점령은 네오콘의 실책이며, 미국 외교 역사에서 최악의 실패다. 이 바람에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대단히 나빠졌다. 미국은 내년 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전통적인 주류(mainstream) 외교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 실패를 강조했는데, 중동 접근법 자체가 틀렸나.

“중동 문제가 세계 안보를 위협한다는 착점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방법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라크전쟁은 ‘문화 읽기’에 실패했다. 알 카에다라는 테러 단체와 사담 후세인이란 독재 국가 문제를 혼동해 하나의 사안으로 봤다.”

―오늘의 한미관계를 평가해 달라.

“한미동맹은 일부 표면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강력하다. 미국 언론은 부시-노무현 정권이 이념적으로 교유 불가능(incompatible)하다고 묘사했지만, 두 나라가 모두 다양한 의견이 가능한 민주사회라는 점을 간과한 평가다.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 6자회담에서의 정책 조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과 같은 동맹의 성공 사례가 있다.”

탤벗 소장은 미 의회의 FTA 불신 기류를 의식한 듯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민주당의 상하원 지도자인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과 찰스 랭걸 하원 세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현재는 반대 기류가 있지만 종국에는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어릴 적 어떤 가르침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는지 한국의 청소년에게 소개해 달라”고 물었다. 탤벗 소장은 “한국인으로만 성장하지 말라. 세계인이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민주당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 탤벗은 누구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에서 1994년부터 국무부 2인자인 부장관에 올라 7년간 재임했으며, 2002년 이후 민주당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클린턴의 친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일대 졸업 후 ‘로즈 스칼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할 때 청년 클린턴과 같은 집에 살면서 교분을 쌓았다.

시사주간 타임지의 저명한 외교전문기자로 활약하면서 냉전시대 소비에트 분석으로 명성을 얻었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자서전을 처음으로 번역했다.

각각의 국익계산법을 갖고 있는 개별 국가의 직접 외교보다는 주권국가의 권한 위임을 받은 유엔 등 국제기구가 21세기 국제분쟁 해결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철학 때문에 ‘세계 연방주의자(world federalist)’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그의 리버럴한 외교철학은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2008년 대선 승리를 전제로 할 때 ‘부시 이후’ 외교정책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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