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노인들의 ‘서러운 어버이날’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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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김 할머니. 김 할머니는 두 아들이 있지만 모두 연락이 끊겨 2평짜리 판잣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김 할머니. 김 할머니는 두 아들이 있지만 모두 연락이 끊겨 2평짜리 판잣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무허가 판자촌인 속칭 구룡마을 입구에는 환한 봄볕 아래 ‘축 어버이날’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이을순(가명·73) 할머니는 그 플래카드 아래를 다리를 끌며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빈 병을 팔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빈 병 줍고 폐지 모아서 일주일에 1000원, 2000원씩 벌어 쓰지.”

이 할머니는 20년째 이 마을에 홀로 살고 있다. 2007년 현재 88만 명으로 추산되는 홀로 사는 노인 중 한 사람이지만 이 할머니는 그중에서도 더 외진 곳에 놓여 있는 사람이다. 소식은 끊긴 채 ‘주민등록상에 남아 있는’ 가족 때문이다.

“남편이 있는데 이혼도 안 해 주고 혼자 도망갔어. 아들도 둘이 있는데 하나는 소식을 모르고, 하나는 저 살기도 힘들지. 생활보호대상자인가 그거 신청해 보라고 해서 알아봤는데, 자식들이 있다고 안 된다네.”

이웃인 박정애(가명·74) 할머니도 이 할머니와 같은 처지다. 아들, 딸 합해 삼남매를 두었지만 연락이 끊겨 혼자 산 지 오래다. 부엌도 따로 없이 수도 하나가 달린 2평 남짓한 방에서 지내는 박 할머니는 이 할머니처럼 밖으로 나가 폐품 파는 일조차 할 처지가 못 된다.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해. 일도 못하고. 두통이 너무 심해서 텔레비전도 못 봐. 복지회관에서 도와줘서 그나마 살지. 주민등록상에 자식들이 있다고 나라의 지원도 못 받아.”

구룡마을의 노인들을 지원하는 인근 능인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는 “구룡마을엔 어려운 처지의 독거노인이 많은데 이 중 상당수는 주민등록상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못 된다”며 “복지관에서 지원하는 월 5만 원 정도로 생활한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문정2동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속칭 개미마을에도 자녀가 등 돌린 독거노인이 적지 않다. 이 마을 김영희(가명·68) 할머니는 “자식 욕 먹일까봐”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를 못내 꺼렸다. 10년째 홀로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자식 때문에 주위에 손을 벌릴 수가 없다고 했다. 서른이 되기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셋을 혼자 키웠지만 할머니에게 남은 건 성한 데 없는 몸과 빚뿐이다.

법적으로는 자식이 있다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7일 “독거노인에게 자식이 있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이라든지 부양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증빙자료를 내면 보호대상자로 지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칙과 현실의 거리는 멀다. 현장에서 독거노인을 돌보는 한 사회복지사는 “동사무소나 기관에서는 서류만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부양자가 있으면 혜택을 받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애들 때문에 살기가 더 힘들어.” 어버이날을 맞는 ‘자식 있는 독거노인’들의 한결같은 호소였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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