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88년 ‘로마제국 쇠망사’ 완간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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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5월 8일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이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전 6권을 완간했다. 첫 권이 나온 지 12년 만이었다.

이 책은 로마제국의 11대 황제 트라야누스 시대부터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돼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 1400년의 역사를 담은 대작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흐르는 듯한 선율의 문장을 어떤 소설보다도 몰두해 읽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 책은 대단히 유려한 문장으로 쓰인 역사책이다. 다른 한편으로, 제목에서 보듯 ‘로마 제국은 왜 망했는가’에 대해 본격 탐구한 저서로 잘 알려졌다.

이 질문은 역사가들의 과제였지만, ‘로마제국 쇠망사’가 독보적이었던 이유는 기번의 탁월한 어학 실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혔고 프랑스어와 히브리어도 뛰어났다. 덕분에 기번은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가 아니라 역사기록 자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아름다운 문장과 생생한 인물 묘사는 이러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책의 주석(註釋)이 유명하다. 기번은 텍스트에 붙인 방대한 분량의 주석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단지 로마제국의 쇠망에 관한 의견뿐 아니라 18세기 영국이 처한 현실과도 비교함으로써, 기번은 고대의 역사를 읽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과거는 현재와 무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부패한 정치문화, 상하 계급의 갈등, 비효율적인 재정 제도, 심지어 지리적인 구조와 말라리아의 창궐 등 로마제국의 쇠망 원인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기번은 이를 당시 대두된 기독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는 현세가 아닌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젖은 로마 시민들은 현세로서의 로마제국에 대해 열렬히 충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사가들은 기독교가 혼란스러운 로마 정국을 가다듬고 통합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수용됐다는 점, 기독교도 황제들의 군사 정책도 다른 로마 황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 성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세속사에 참여했다는 점 등을 들어 기번의 주장을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며 경제적인 요인에 무게를 싣는 쪽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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