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베블런 효과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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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한 교포 사업가는 홍콩의 바이어를 방문했다가 오히려 거래가 끊겼다. 그의 차 벤틀리를 보고 ‘벤츠만큼 좋은 차냐’고 물었다. 3억 원이 넘는 차를 타는 과시형 부호에게 크게 결례를 한 것이다. “2500만 달러에 산 집을 개조하는 데 500만 달러를 썼다”고 자랑하는 그에게 ‘홍콩달러 기준이냐. 비싼 집인데도 수리할 곳이 많던가’라고 물었다. 미국달러는 홍콩달러의 7.8배. 230억 원짜리 저택을 30억 원이냐고 물었으니 홍콩 부호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400만 원짜리 청바지, 1억5000만 원짜리 TV가 더 잘 팔린다. ‘브랜드 아파트’ 값은 더 빨리, 더 높이 뛴다. 유통, 금융, 건설, 외제차 업계는 최상류 부자를 대상으로 한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 마케팅에 승부를 건다. KOTRA 조사 결과 BMW 750i 모델은 뉴욕에선 7만5800달러, 도쿄에서 9만4450달러인데 서울에선 두 배가량인 18만4400달러에 팔린다. ‘고가(高價)마케팅’ 전략은 유난히 한국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

▷‘과시적 소비’ 상품은 비쌀수록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진다. 미국의 경제학자 겸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1900년을 전후한 미국의 과소비를 비판했던 ‘베블런 효과’다. 이런 제품은 저급품으로 취급될까 봐 웬만하면 값을 내리지 않아 다른 소비자들까지도 비싼 돈을 내야 한다. 사기꾼이 베블런 효과의 틈새를 파고든다. 작년엔 33만 원짜리 중국산 시계를 ‘유럽 왕실에만 납품한다’고 속여 500만 원씩에 판매한 ‘빈센트 시계’ 사건도 있었다.

▷고급차를 모는 사람은 옷이나 음식 등도 그 수준에 맞춘다는 ‘디드로 효과’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가 서재용 가운을 선물 받은 뒤 옷에 맞춰 책상 등을 교체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잘 팔리는 제품을 덩달아 구입하는 ‘밴드왜건 효과’, 거꾸로 다수가 구입하는 제품은 사지 않는 ‘스놉(속물) 효과’도 나타난다. 당신은 어떤 유형인가.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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