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잃어버린 26년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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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6년.’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집권 14년과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12년 집권 기간을 통틀어 부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기간에 고비용 비효율 저성장 고실업으로 함축되는 ‘프랑스 병’은 치유가 어려울 만큼 깊어졌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는 프랑스 경제의 발병 시점을 미테랑 집권 초기인 1980년대 초로 잡는 견해가 유력하다. 1981년 세계 7위였던 프랑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6년 17위로 급전직하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유럽에서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대국이며 유럽 50대 기업 중 10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국가 중 경제성장은 가장 정체돼 있는 반면 재정적자는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실업률도 매우 높은 삼중고에 빠져 있다.

‘정부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보다 더욱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을 프랑스 현대사는 웅변으로 증명한다. 정권은 좌파(미테랑)에서 우파(시라크)로 바뀌었지만 인기에 연연하고 개혁에 눈을 감은 탓에 경제는 멍이 들 대로 들었다는 지적이다. 뒤집으면 프랑스 유권자들도 이 기간에 비전과 소신을 지닌 책임 있는 지도자를 뽑지 못했거나 뽑을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7일 새벽(한국 시간) 대선 개표 결과 프랑스 유권자의 과반수가 성장과 개혁을 주창한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손을 들어 줬다. 반성적 성찰에 기인한 것일까.

4월 14일 발행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대선을 커버스토리로 비중 있게 다뤘다. 권두언의 제목은 ‘프랑스의 기회(France's chance)’였고, 부제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프랑스를 개혁할 최적의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대선 1차 투표 일주일 전인데도 기사는 앵글을 철저하게 사르코지 후보에게 맞췄다. “권위 있는 잡지가 이런 편집을…” 하는 생각이 얼핏 들 정도였다. 그만큼 ‘깊은 병’을 앓고 있는 프랑스의 개혁이 대선의 핵심 화두였다.

프랑스 병을 치유할 묘방은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이고 구체적인 처방은 노동시장 유연화, 시장경제 체제 강화, 재정지출 및 세금 감축, 공공부문 개혁으로 압축된다. 오랜 세월 중병을 앓게 된 프랑스를 개혁할 최적의 인물은 역시 사르코지 후보라고 이 잡지는 곳곳에서 암시했다.

좌파 및 우파 정권이 교대로 2기씩 26년을 집권하는 동안 프랑스 경제는 병이 깊어갔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달랐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아일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사회민주적 전통이 더 강한 국가들도 정도의 차는 있지만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아 왔다.

1996년 타계할 때까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겨 프랑스 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통하는 미테랑 대통령으로선 관 뚜껑을 열고 나와 항변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을 쑤는 경제 때문에 프랑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 앞에선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만 같다.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 앞에는 개혁을 통한 경제 회생뿐 아니라 쪼개진 사회의 통합, 복잡한 외교에 이르기까지 난제와 험로가 놓여 있다.

‘혁명이 성공한 일은 있으나, 개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프랑스에서 회자되는 이 경구가 옳지 않다는 것을 사르코지 당선자는 증명할 수 있을까. 일단 프랑스 병부터 치유하고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 정답이다.

최영훈 국제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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