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美최고 디자인 기업‘IDEO’총괄책임자 마르쿠스 디벨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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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디자인회사인 미국 IDEO의 디자인 총괄책임자 마르쿠스 디벨 씨는 “영어에 능숙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 학생은 대체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며 “수줍어하면서 영어에도 능숙하지 못하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한 선진 디자인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세계적 디자인회사인 미국 IDEO의 디자인 총괄책임자 마르쿠스 디벨 씨는 “영어에 능숙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 학생은 대체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며 “수줍어하면서 영어에도 능숙하지 못하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한 선진 디자인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미국 최고의 디자인 기업 ‘IDEO’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IDEO가 디자인한 제품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펜이나 수저만큼 일상생활에서 자주 손에 잡는 컴퓨터 마우스. IDEO는 1980년 애플사의 의뢰로 이 회사 최초의 마우스를 개발했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공동으로 만든 유선형 마우스는 요즘 누구나 사용하는 둥그스름한 마우스의 원형(原型)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 15위에 올랐다. 25위 이상에서 디자인 회사로는 IDEO가 유일하다. 25개 기업 가운데 도요타 스타벅스 IBM 삼성 소니 등 22개 회사가 IDEO의 주요 고객이다.

이 회사의 디자인 총괄책임자 마르쿠스 디벨(42) 씨가 삼성디자인학교(SADI)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했다. 1995년부터 IDEO에서 일한 그는 MS 인텔 HP 펩시콜라 등 유명 업체의 다양한 신제품 디자인을 총괄했다.

디벨 씨를 만나서 디자인의 가치와 디자인 산업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IDEO를 미국 최고의 디자인 기업으로 만든 특별함이 있다면….

“디자인을 위한 수요자 근접 관찰이 유명하죠. 디자인은 ‘혁신을 위한 인간 중심의 접근’입니다. 사용자 관찰은 많은 디자인 회사가 보편적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IDEO에는 질적으로 차별된 노하우가 있어요. 사용자와 한동안 함께 산다고 보면 됩니다. 집까지 따라가서 필요한 움직임을 일일이 기록하니까요.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이해한 후 새로운 전략을 제공하는 것이 IDEO의 디자인입니다.”

마르쿠스 디벨
△1965년생 △1988년 독일 뉘른베르크 예술학교 졸업 △1989∼1990년 뉘른베르크 ONE 클럽 디자이너 겸 매니저 △1994년 스위스 몽트뢰 아트센터 디자인전공 졸업 △1995년 IDEO 팔로알토사무소 디자이너 △2000∼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RAW 디자인사무소 대표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학(CCA) 전임강사, IDEO 팔로알토사무소 디자인 디렉터

―‘사용자 관찰’의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한다면….

“주방기구를 디자인한다고 칩시다. 저는 세 가지 샘플을 관찰할 겁니다. 주방기구가 뭔지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 주방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기구 사용법은 아는 젊은 학생, 그리고 매일 사용하는 요리사. IDEO는 이런 세 부류를 ‘극단적 사용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에 대한 관찰 결과를 디자인에 적용하면 평범한 주부는 고려할 필요가 없어지죠.”

―최근 디자인한 제품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인가요.

“1년 전쯤 내놓은 웨스턴디지털의 외장 하드드라이브(HDD)입니다. 갈수록 데이터 용량이 커지면서 외장 HDD가 많이 쓰이지만, 모양이나 보관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죠. 우리 팀은 HDD와 책의 공통된 메타포에 착안했습니다. 책과 HDD는 모두 ‘대량의 정보’를 암시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북이 쌓인 HDD보다는 수북이 쌓인 책의 이미지를 좋아하죠. 답은? ‘책 모양의 HDD’입니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웨스턴디지털의 HDD 매출을 반년 만에 4배로 늘렸습니다.”

―첫 작업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시작했다던데….

“독일에서 나이트클럽 2곳을 디자인했습니다. 한 곳에서는 매니저로도 고용됐었어요. 인테리어뿐 아니라 DJ 고용, 파티 기획 등 운영 전반을 책임졌죠. 딱 1년만 했습니다. 나이트클럽이란 데가 워낙 유혹이 많은 일터라서….(웃음) 그 클럽의 디자인도 사용자 관찰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보통 바에 가서 앉으면 벽에 진열된 병이나 바텐더 얼굴을 봐야 하죠? 그런 상황, 좋아하십니까? 저는 원탁 바를 만들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성을 바라보는 상황이 훨씬 만족스럽잖아요.”

―지금 하는 일과는 많이 다르네요.

“똑같은 일입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디자인의 목적이자 즐거움이죠. 무엇을 디자인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건축가가 옷 가구 시계 비행기 등 모든 것을 디자인하잖아요.”

―한국 디자이너나 디자인 전공 학생을 만나 본 적이 있나요.

“이번 SADI 워크숍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에게서 대부분 매우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핵심보다는 부수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더군요. 모양이나 색깔을 얼마나 예쁘게 만드느냐는 디자인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면 아름다움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디자인 작업의 성패는 중요한 것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능력에 달렸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해외 진출을 원하는데….

“문제는 영어입니다. 재능은 다음이에요. 좋은 디자인 회사일수록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언제까지 무슨 일을 해 놓으라’는 지시는 IDEO에 없습니다. 좋은 디자이너인데 잘 소통할 수 없다면, 유능한 디자이너는 되기 어렵습니다. 최고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회사는 어떤 스타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아요. 고객(기업)의 비전과 전략, 브랜드를 디자인합니다.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한국 기업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 기업은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강합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하나의 최선책을 찾아가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디자인 옵션을 잔뜩 준비한 다음 누군가가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더군요. 최고경영자(CEO)의 절대적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좀 더 사용자 관점에서 체험하고 고민하기를 권합니다. 해결책이 아니라 옵션을 제공하는 디자인 프로세스로는 세계 시장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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