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공지희의 어린이 콩트]<5·끝>나는 나를 사랑한다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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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미운 아이인 걸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으이그, 미운 일곱 살” 하는 소리를 들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더 일찍부터였을까?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나는 멋진 화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

하늘은 초록색으로 칠했고, 바다는 검은색, 나무는 하얀색 보라색으로 그렸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자동차에는 공주님이 탄,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에는 왕자님이 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은 내 풍경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바다 위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는 하늘이 있어야지. 이렇게 거꾸로 그리면 틀린 거야. 다시 그려.”

나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콧김을 뿜으며 내달리는 말을 탄 아이를 그렸다.

선생님은 내 그림만 유치원 벽에 붙여 주지 않았다. 화가고 뭐고 다시는 그림 그리기가 싫어졌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여자애들은 다 같이 피구를 하고, 남자애들은 축구를 했다. 나는 여자이지만 축구가 더 좋아서 가끔 축구하는 애들 틈에서 뛰었다. 그러다가 몇 번 선생님에게 혼이 나 운동장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축구처럼 재밌는 놀이를 할 수 없다는 건 그렇다 치고,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선생님 눈빛 때문에 속상했다.

중학생이 되니 성적이 큰 문제였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센 서열대로 왕이 된다.

사람 세상에서는 공부 서열이 모든 걸 결정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주 쉽다.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 얼마나 못하느냐? 공부 잘하면 착한 아이, 예쁜 아이다. 공부 못하면 나쁜 아이, 미운 아이다.

고등학교도 아닌 중학교에서부터, 하루 종일 ‘공부’ ‘성적’ ‘내신’ 소릴 듣는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철저히 구분해 마치 완전히 다른 종족들인 것처럼 차별을 한다.

에서는 더 심하다. 엄마는 아주 웃기는 소리까지 한다.

“니 언니만큼은 못해도 중간은 가야지. 이걸 성적이라고 받았느냐? 너랑 니 언니랑 한 배 속에서 나온 거 맞니?”

“엄마가 낳아 놓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아버지는 한술 더 뜨신다.

“넌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서 어떻게 하냐? 이담에 뭐 해먹고 살래?”

기죽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나 잘하는 거 많아요. 자전거 잘 타고, 힙합댄스도 잘 춰. 그리고 만화도 잘 그리지, 요리도 잘하지. 타자 속도 500 넘지….”

“어이구, 말이나 못하면….”

부모님의 긴 한숨이 날아와 내 심장에 얼음조각처럼 꽁꽁 박혔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밉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무디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마음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미운 아이인 걸 알게 된 때였던 것 같다.

날마다 그걸 확인하는 게 싫었다. 나도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나를 구해 주세요’ 하고.

누군가 나를 향해 대답했다.

‘그냥 오리는 백조가 될 수 없지만, 미운오리는 백조가 될 수 있어. 벼랑에서 떨어질 때 백조는 날개를 활짝 펴서 올라.’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나였다.

나는 백조가 되어 멋지게 나는 꿈을 갖게 되었다.

먼저 오리 엄마 아버지 곁을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집을 나와 갈비집 주방 일자리를 구했다. 내 날개를 위한 시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산더미 같은 그릇들을 닦고 또 닦았다. 처음엔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씻은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 반짝거리는 게 뿌듯했다. 내가 자랑스럽고 꿈만 같았다. 앞으로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엄마 아버지가 생각났다. 엄마 아버지에게 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일을 잘하고 있는 걸 알면 엄마 아버지는 깜짝 놀라겠지?’

이틀째 되는 날,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엄마가 나를 꼭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말했다.

“엄마 아빠는…. 수연이를 사랑해.”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말이다. 나는 대답했다.

“나도… 나를 사랑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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