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박지윤 아나운서 포털 ‘권력’에 맞서다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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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미니 홈피 문화는 우리네 ‘마실’ 풍습과 많이 닮았다. 벗들의 집에 들르듯 친구 홈피에 들어가고 담소를 하듯 게시판에 글을 남긴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처럼 사진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돌려 보기도 한다. 싸이월드의 ‘1촌 맺기’ 등 서비스는 가까운 친구끼리는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는 우리 문화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관계가 가까울수록 사생활 침해도 심해지는 법이다.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면 남을 헐뜯는 말들도 곧잘 오간다. 미니 홈피들도 그렇다. 비공개 게시판의 내용이 널리 퍼져서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일상에서는 감히 못할 비난들도 악플(악성 댓글)로 둔갑하여 상처를 준다.

라디오가 널리 보급됐을 때, 언론학자 매클루언은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는 “가족의 묵은 그물눈이 파시즘의 선율을 타고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홀로 라디오를 듣는 이들은 방송 진행자들과 자신이 일대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듯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글에서 봤다면 거부감을 느낄 만한 내용도 친근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독재자들의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가 널리 쓰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터넷은 더 그렇다. 게시판은 ‘수다 떤다’는 느낌이 강하다. 자신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친하다는 기분 탓에 남들이 쏟아 내는 이야기들이 더 솔깃하게 들리고, 헐뜯는 말들도 한층 거칠어진다. 게다가 포털 사이트들의 검색어 순위는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는 수다꾼 역할까지 한다.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주요 검색어에 이끌려 내용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험담하는 소리는 더욱더 커진다.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는 탓이다.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만큼 인터넷에서 비방이 난무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줄 원리도 드물다.

인기 아나운서 박지윤 씨가 개인 미니 홈피에 올린 사진이 해킹되어 널리 퍼졌단다. 그는 숨으려고만 했던 이전의 피해자들과는 달랐다. 자신이 입은 상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무책임한 인터넷 문화에 강하게 맞섰다. 검색어 순위는 사람들의 관심을 돋울 뿐, 무엇이 옳은지 가려 주지는 못한다. 무성해진 소문은 진실을 잠재워 버릴 수도 있다. 점점 ‘권력’이 되어 가는 포털의 위력이 두려운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윤 아나운서의 당당한 처신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용기만큼이나 돋보인다. 존경스럽고도 존경스럽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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