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데스노트 (Death Note)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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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처단은 정의일까 살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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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이란 무얼까요? 정의(正義)란 무얼까요? 아, 숨이 턱 막혀 오는 무거운 질문이 아닐 수 없네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세상 모든 일을 이렇게 일도양단(一刀兩斷·칼로 대번에 내리쳐 두 도막을 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와는 다른 난감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선인 줄로만 알았는데 악으로 판명되고, 오늘은 정의였는데 내일은 불의로 전락하는 알쏭달쏭한 상황 말이죠. 바로 이런 고민을 담은 영화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영화로 옮긴 ‘데스노트(Death Note)’입니다.

[1] 스토리라인

천재 법학도 라이토(후지와라 다쓰야). 그는 우연히 ‘데스노트’라는 공책을 손에 넣습니다. 죽음의 신이 내린 데스노트는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운명의 노트. 특정인의 이름을 적어 넣으면 그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무시무시한 공책이었습니다.

흉악범들이 죄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을 받아 왔다는 생각을 평소에 가져온 라이토는 TV와 신문에 등장하는 살인범, 납치범, 은행 강도들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어 넣어 하나하나 처단해 나갑니다. 이윽고 수백 명의 범죄자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연쇄 죽음을 당하자 세계는 혼란에 빠지죠. 사람들은 흉악범들을 단죄하는 정체 모를 이 인물을 ‘키라’라고 부르며 숭배합니다. 범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라는 것이죠.

이때 ‘L’이라는 천재 소년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L은 천재적인 두뇌와 추리력으로 키라의 정체에 접근해 갑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사람들은 키라를 정의의 신으로 여기는 거야.”(라이토) “키라를 정의로 부르는 건 오만이야. 어떤 범죄자라도 법으로 심판해야 하잖아.”(시오리)

라이토와 여자 친구 시오리가 벌이는 논쟁엔 영화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라이토(또는 키라)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떤 가치판단을 내릴 것이냐’는 것이죠. 정말 헷갈립니다. 라이토의 행위는 시각에 따라 정의일 수도, 정의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먼저 ‘목적론적 윤리론’의 시각에서 바라볼까요? 목적론적 윤리론은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정당화 된다’는 것이죠. 범죄 없는 이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라이토의 목적은 옳으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임의로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행위도 일종의 정의로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의무론적 윤리론’의 시각으로 볼 땐 180도 달라집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목적은 물론 수단 역시 옳아야 한다’는 내용의 의무론적 윤리론에 따르면, 라이토의 행위는 정의가 아니라 살인일 뿐입니다. 제 아무리 ‘이상 사회 건설’이라는 옳은 뜻에서 출발한 일이지만, 법에 의거하지 않은 살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으니까요.

이런 면에서 끔찍하게 생긴 사신(死神) ‘류크’가 남기는 다음 대사는 영화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정의를 둘러싸고 서로 죽인다. 인간들이란 참 재미있어!”

여기서 우리는 ‘정의의 자의(恣意)성’이란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절대 불변의 가치를 가진 줄로만 알았던 정의가 그것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숨은 의도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좋은 예입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학살은 ‘살인’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었습니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혈통적 순수성’을 ‘정의’로 규정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학살 역시 정의로운 수단으로 포장했던 것이죠.

영화 ‘데스노트’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여기서 잉태됩니다. 정의라는 가치마저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유용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당초 흉악범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사용되던 데스노트는 점차 라이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까지 마구 죽이는 악마의 노트로 변질돼 갔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라이토의 살인 행각을 통해 법적인 근거와 절차를 외면한 정의가 얼마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알쏭달쏭 퀴즈

영화 속 데스노트는 철저한 룰에 따라 작동합니다. ‘①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②얼굴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쓰면 효과가 없다. 따라서 동명이인(同名異人)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와 같은 법칙들이죠.

그런데 혹시 이런 데스노트의 법칙에는 논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진 않을까요? 악필로 이름을 써서 죽음의 신이 그 이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범죄자의 얼굴을 TV에서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하는 한국에선 데스노트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데스노트의 허점을 콕 짚어내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 앞에 데스노트가 떨어져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데스노트를 집어 들겠습니까? 아니면 거부하겠습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데스노트는 아담과 이브 앞에 놓인 선악과(善惡果)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죠(죽음의 신 ‘류크’가 즐겨 먹는 사과는 성경 속 선악과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혹적이지만, 그것을 집어 드는 순간 인간의 죄악은 시작될 것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정답은 다음 동영상 강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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