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들 자칫 실수… 미리 막는 게 최선이죠”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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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여의도 한양빌딩 9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명선거지원단 사무소에서 황재덕 지원단장(가운데 앉은 사람)과 직원들이 대선 예비주자 캠프와 팬클럽에 안내할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4일 서울 여의도 한양빌딩 9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명선거지원단 사무소에서 황재덕 지원단장(가운데 앉은 사람)과 직원들이 대선 예비주자 캠프와 팬클럽에 안내할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대선캠프-팬클럽 전담마크 ‘선관위 여의도팀’

3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엔빅스빌딩 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무실을 찾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윤익 사무관의 눈에 우편봉투 크기의 초청장 한 장이 들어 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특별강연 및 무궁화포럼 전국대회’라는 제목의 초청장을 펼치니 ‘…우리 무궁화포럼은 박근혜님을 모시고 역사에 기록될 출정식을 가지려 한다’는 문구가 가장 먼저 보였다. 불과 9일 뒤인 3월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겠다는 이 행사엔 김수희 전영록 정수라 등 유명 가수와 연예인이 대거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초청사의 문구로 보나 축하 공연의 성격으로 보나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 “대선 후보가 선거법 어기면 나라가 불행해져”

장 사무관이 “아무래도 선거법 위반 소지가 높다. 행사를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자 박 전 대표의 캠프는 발칵 뒤집혔다.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대책회의를 거듭한 끝에 행사 5일 전인 3월 26일 박 전 대표의 행사 불참을 결정했고 결국 이 행사는 취소됐다.

장 사무관은 “박 전 대표가 ‘법 지키며 원칙대로 가자’고 결단을 내렸다고 들었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규모 출판기념회를 연 직후라 포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캠프가 협조해 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장 사무관은 선관위 공명선거지원단 소속이다. 국회 앞 여의도 한양빌딩에 상주해 일명 ‘여의도팀’으로 통하는 지원단은 지난해 10월 선관위가 만든 대선 특별팀. 총 10명 중 서기관 사무관 6명이 각자 맡은 대선 예비주자의 캠프와 팬클럽을 수시로 방문해 선거법을 안내하고 불법 선거운동이 될 수 있는 행사나 발언을 미리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선관위가 이런 조직을 구성한 것은 처음이다. 선관위는 여의도팀을 창설하며 “대선 후보가 선거법을 어기게 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감시 단속이 아니라 서비스 행정을 펼친다는 생각으로 일하라”고 주문했다.

일정한 퇴근 시간도 휴일도 없는 빡빡한 생활이지만 사후 단속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활동 결과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의 경우 여의도팀의 충고를 듣고 ‘한반도 대운하’ 그림이 그려진 연하장을 보내려던 계획을 접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성균관대 초청 강연에서 참석자에게 자신의 서적을 배부하려던 것을 그만뒀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팬클럽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정관을 자진 개정했다.

○ 법-현실 사이 괴리 메우는 역할

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흥빌딩 이 전 시장의 캠프인 안국포럼 사무실. 이 전 시장 측 권택기 기획실장이 여의도팀 김대년 서기관을 상대로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할 경우의 장단점을 묻고 있었다.

김 서기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권 실장은 “이 전 시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할 경우 그 보좌진은 명함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새길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황당해했다.

“아니, 그게 안 돼요? 선거사무원으로 등록해도 안 되나요? 안 그래도 요즘 우리 시장님 측근을 사칭하는 사람이 많아서 골치 아픈데….”

김 서기관은 “법규해석과에 다시 해석을 의뢰하겠지만 인쇄물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명함에 후보 이름을 넣지 말라는 게 상식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과 일반 상식이 맞지 않아 고심하는 것은 여의도팀원들에겐 흔한 일이다. 김 서기관은 “현행 선거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고 시급히 개정해야 할 사항도 많다”며 “캠프는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그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거판의 현실과 법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 후보 진영도 여의도팀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권 실장은 “솔직히 우리 선거법이 너무 어렵다”며 “전에는 선관위도 우리 사정을 잘 모르고, 우리도 선관위에 직접 묻기가 어려워 힘들었는데 여의도팀이 생긴 뒤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팀 인력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팀원들은 캠프와 팬클럽으로부터 하루 평균 10여 통의 선거법 관련 문의 전화를 받는다고 밝혔다. 간단한 사안은 직접 대답해 주지만 복잡하고 애매한 사안은 중앙선관위 담당과에 다시 해석을 의뢰한다.

후보 캠프가 추진하는 일들을 파악해야 하다 보니 캠프 관계자와 교분이 생기고 때로는 ‘절대 보안’을 전제로 캠프가 수립한 선거 전략을 듣고 선거법상 문제가 없는지 조언해 주기도 한다.

진승엽 서기관은 “처음에는 캠프로부터 ‘감시자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진 편”이라며 “유착은 있을 수 없지만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로부터는 ‘캠프 사람 다 됐다’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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