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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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왕일민 유현민 지음/240쪽·98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자꾸 코끝이 시큰거려 책장을 넘기기 어렵다. 한 중국 할아버지의 지극한 효심이 전해준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것보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74세의 할아버지는 99세의 어머니가 “기쁘고 좋은 일 없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가 평생 해 보지 못한 여행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 할아버지는 티베트를 가 보고 싶은 어머니께 비행기 삯을 드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대신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태울 자전거수레를 만든다. 단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인 긴 ‘소풍’이다. 무모하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는 그 마음의 얼마만큼이나 따라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중국 헤이룽장 성의 탑하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던 평범한 할아버지 왕일민 씨가 죽기 전에 티베트 라싸를 보고 싶다는 어머니와 떠난 여정의 기록이다. 왕 씨는 어머니를 태운 자전거수레의 페달을 밟아 2년여를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 섬까지 여행한다.

왕 씨는 “쉬엄쉬엄 바쁠 것 없이” 어머니에게 세상구경을 시켜준다. 한적한 시골길, 어머니가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가 노래 잘하시는 줄 몰랐어요.” “젊었을 때는 더 잘했지.” “왜 전 노랫소리를 듣지 못했죠?” “몰래 불렀어, 너무 슬픈 노래들이라서.” 왕 씨의 어머니처럼 우리네 어머니들도 우리를 위해 살기 전에 찬란한 젊은 날을 보낸 여성임을 깨닫는다.

왕 씨는 여행에서 어머니의 투정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자신을 책망했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여행의 본질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니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티베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2년여의 여행은 백한 살이 된 어머니를 지치게 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은 채 헤이룽장 성으로 자전거수레를 돌린다. 어머니는 뒤늦게 아들의 결정을 알지만 이해해 준다.

“너와 세상 구경하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기쁘게 눈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왕 씨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왕 씨도 행복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도 왕 씨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는 무엇이 효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알아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했다.

왕 씨를 만난 저자 유현민 씨가 왕 씨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유 씨는 병석의 팔순 아버지를 한국에 남겨둔 채 1년여간 중국 유적을 답사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지 않으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만 하면서 살아온 내 어머니의 삶은,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먹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왕 씨인지 유 씨인지 모를 고백이 이 세상 불효자들의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른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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