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고려대 入試모델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코멘트
미국 메인 주 브런즈윅 소재의 명문 보우든대는 발음 때문에 곧잘 화제에 오른다. ‘Bowdoin’이란 철자를 많은 미국인조차 ‘보도인’으로 읽는다. 하지만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학교와 동문은 스스로를 ‘보우든’으로 발음한다. 이 대학이 유명해진 데는 독특한 입시제도도 한몫한다. 보우든대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 제출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다양한 재능의 학생을 뽑겠다는 취지다.

▷우리 교육인적자원부는 미국처럼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주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간섭한다. 그런 틈새에서 고려대가 올해 의미 있는 입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08학년도부터 모집 단위별로 정원의 최대 50%까지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파격적인 입시안을 2월에 발표했다. 연세대 등 다른 학교들이 뒤따랐다. 고려대가 이번엔 “자체 조사 결과 특수목적고보다 지방고 출신의 학점이 좋았다”며 일반전형 모집정원의 최대 50%에 대해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고려대의 ‘파격 행보’는 더 있다. 3월엔 입시설명회를 통해 “입시학원들이 만든 배치표와 실제 합격자의 점수가 달라 혼란을 준다”며 2005∼2007년 모집 단위별 합격자의 수능 점수와 영역별 등급을 공개했다. ‘대학을 서열화한다’는 지적과 다른 대학들의 시기 어린 눈총을 받았지만 ‘수험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선’이라며 공개를 관철했다. 학원들은 머쓱해했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감동했다.

▷고려대 모델은 수능 내신 논술이라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깨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수능이면 수능, 내신이면 내신 하나만 잘해도 뽑겠다는 거다. 서울대가 통합논술을 확대하겠다고 할 때 고려대가 ‘논술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오히려 축소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산물이다. 규제 속에서도 ‘자율 모델’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2월의 수능 입시안에도 떨떠름해하던 교육당국이 이번 ‘내신 확대’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튼 고려대 모델은 대학 자율이 최선의 입시 제도임을 말해 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