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소설속 ‘연애배틀 매뉴얼’

  • 입력 2007년 5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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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놀이와 비슷한 즐거움과 흥분을 주지만, 시작과 끝마무리만큼은 결코 놀이와 비교할 수 없다. 그 모든 행위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딱 보면 연애지침서의 몇 구절일 듯. 그렇지만 이 책은 소설이다! 최재경(36) 씨의 새 장편 ‘플레이어’는 ‘대신 연애해 주고 돈을 받는’ 사람의 얘기다. 돈벌이를 위해선 연애를 ‘정말 잘해야’ 한다. 그러려면 ‘소유욕 드러내지 않기’는 필수, 달콤한 밀어를 나누면서도 숙지해야 할 것은 연애란 실은 살벌한 전쟁이라는 것.

소설은 감동은 줄 수 있을지언정 데이트 코치는 될 수 없다? 그럴 리가. 어떤 소설은 그야말로 ‘이럴 땐 이렇게’라며 콕콕 짚어주는 ‘연애 배틀 매뉴얼’이다.

이를테면 김연수(37) 씨의 중편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그렇다. 이 책은 이른바 ‘바람둥이 남자 대처법’이다. 진우는 말하자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고 믿는 타입이다. 지금 사랑하는 여자와 앞으로 사랑할 여자. “닭고기는 평생 사랑할 수 있지만 한 여자는 6개월 이상 사랑하지 못한다”는 진우가 오랜만에 옛날 여자친구 선영이를 만났다. 그런데 웬일. 선영이가 너무 예뻐졌다. 눈이 뒤집힌 진우는 선영이가 대학 동기 광수의 약혼자라는 데도 막무가내로 덤벼든다. 그렇지만 ‘너를 너무 사랑해, 그러니까 섹스하자’는 인간에게 넘어가지 말 것. 단언컨대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닭고기를 사랑해’보다 순도가 한참 낮다. 그럴 때는 “사랑은 그런 데 쓰는 말이 아니거든”이라고 딱 잘라 말해 줄 것. 소설의 지침은 이렇게 명쾌하다.

정이현(35) 씨의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표제작은 더욱 실용적이다. 두 번째 데이트라고 풀어져선 안 되며 절제가 필요한 타이밍임을 인식할 것.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상대 앞에서 마음 놓고 술 취해 버리지 말 것 등등. 괜찮은 남편감을 잡으려고 온갖 머리를 쓰는 22세 여대생은 ‘이 시대에 낭만적 사랑은 허구’라는 문학적 테마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지만, 그 위악적인 주제 덕분인지 연애 매뉴얼만큼은 확실하다.

김경욱(36) 씨의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실린 단편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은 “눈빛의 신화를 잊어라”라고 알린다. “사랑을 꼭 말로 표현해야 돼? 눈빛을 보면 몰라?”라는 말은 어불성설. “차나 한 잔 할까요?”가 아무리 상투적인 말이라고 해도, ‘눈빛으로 유혹한다’는 말 안되는 시도보다 만 배 낫다. 소설 속 남자도 그 말로 연애를 시작했다. 남자건 여자건 연애할 때 명심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낭만적 서사의 주인공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금언이 또 있을까.” 그러니 끈기 있는 자가 우세하다. 소설 속 여자처럼 “헤어지든지 결혼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라고 최후통첩을 하는 단호한 센스도 필요하다(물론 제일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주말에 만날 애인이 없는, 혹은 애인과 틀어져 주말 일정이 비어버린 사람들에겐, 재미난 연애소설도 읽고 매뉴얼도 익히는 것도 괜찮은 스케줄일 듯. 그럼 연애가 더는 유효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읽으면서 밀고 당기기의 속 타고 들떴던 추억을 되새기면 어떨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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