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가정의 달♥ 생애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은

  • 입력 2007년 5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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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비싼 가격표가 아니라 마음이다. 박경서 씨와 딸 민주 양, 어머니 이숙경 씨(왼쪽부터)의 ‘모녀 3대’가 민주의 돌 선물로 만든 책을 펼쳐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선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비싼 가격표가 아니라 마음이다. 박경서 씨와 딸 민주 양, 어머니 이숙경 씨(왼쪽부터)의 ‘모녀 3대’가 민주의 돌 선물로 만든 책을 펼쳐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어렸을 때 나이키 에어 운동화는 ‘○○스펙스’나 ‘△△월드컵’과는 차원이 다른 선망의 브랜드였습니다. 에어쿠션이 있어 2, 3층에서 떨어져도 발이 푹신하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죠.”

홍보대행사 ‘프레인’의 이윤주(30) 씨.

초등학생 시절 나이키 운동화가 탐이 났지만 부모는 비싸다며 좀처럼 사주지 않았다.

몇 달을 조른 끝에 어린이날 선물로 받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동네의 ‘노는’ 형들에게 빼앗겼다.

그가 받은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은 씁쓸한 기억만 남겼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선물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고민스러운 ‘숙제’가 됐다.

상투적이지 않고 감동을 주는 선물은 없을까. 고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다 외손녀를 돌보기 위해 올 2월 퇴직한 이숙경(58) 씨와 딸 박경서(35·그랜드 하얏트호텔 홍보과장) 씨, 손녀 김민주(6) 양의 ‘모녀 3대’를 만났다. 마음이 담긴 선물로 사랑을 가꿔 온 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한다.

○ 할머니의 특별한 선물

이 씨는 2002년 손녀가 태어나자 바빠졌다. 맞벌이로 바쁜 딸 대신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정작 딸을 키웠을 때는 육아일기는커녕 놀아주지도 못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느라 경서와 놀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방에서 공부하는 동안 딸은 문 밖에 앉아 ‘엄마, 이거 맞아?’ 하며 숙제를 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마음의 빚을 손녀에게 갚는다는 느낌이었죠.”(이 씨)

민주가 첫돌이 될 무렵 이 가족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제목은 ‘아기공룡 민주’, 엮은이는 ‘공룡 가족’, 펴낸 곳은 ‘민주네 집’이다.

이 씨의 육아일기를 중심으로 민주 외할아버지가 시를 썼고 나머지 가족이 글을 보탰다. 200부를 찍은 이 책은 가까운 친척과 민주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박 씨는 “아이가 어려 큰 느낌이 없겠지만 나중에 추억할 수 있는 뜻 깊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며 “비용이 80만 원 정도 들어갔지만 우리 가족이 책을 만들면서 느낀 기쁨은 열 배, 백 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특별한 선물 만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매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모아 작은 탁상용 달력을 만들고 있다. 이 달력에는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여섯 살배기의 눈에 82쪽짜리 작은 책은 그다지 재미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다를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기에 담긴 마음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것이 가족들의 바람이다.

○ 부모 마음, 아이 마음

민주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무엇일까. 물론 책이나 달력은 아니다. 어린이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 인형을 가장 갖고 싶어 한다.

선물처럼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따로 노는 것도 드물다.

신세계백화점이 최근 직원 4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은 어린이날 선물로 ‘인형과 로봇 등 전통 선물’(2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옷과 액세서리 등 패션 선물(23%), 책과 학용품 선물(21%),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등 운동용품(14%)의 순이었다. 반면 아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게임기와 컴퓨터,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등 첨단 선물은 4%에 그쳤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부모와 자녀가 치열한 ‘선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이경민(33·국민은행 과장) 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까지 게임기를 사 달라던 아이는 올해 휴대전화로 목표를 바꿨다. 주변에 휴대전화를 가진 친구가 여럿 있다는 것이 아이의 주장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을 작정입니다. 휴대전화는 기기를 산 뒤에도 통화료를 내야 합니다. 아이에게 아직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정된 돈을 써야 하는 아이의 용돈 관리에도 좋지 않습니다.”

○ 선물의 세대 차이

요즘 아이들은 자장면 한 그릇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

‘좋은 선물’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세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박 씨는 어머니가 사탕 부케를 만들어 준 1977년 5월 5일을 최고의 어린이날로 기억하고 있다.

“광화문 앞 큰 거리에서 차를 통제한 채 로봇 태권V, 마징가Z 등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이 행진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보기 힘든 사탕 부케를 들고 다니며 의기양양해했죠.”

이 씨는 19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린이날이면 큰 운동장에서 풍선을 날리며 행사를 했지만 선물을 받은 기억은 없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았는데 아주 큰 자루였어요. 열어 보니 평소에 쓰던 장난감과 물건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웃음) 낑낑대면서 끌고 다니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루에 담긴 것은 바로 부모님의 마음이었죠.”

병원놀이 세트, ‘뽀식이 이용식과의 악수’, 우뢰매 변신 로봇, 미미의 집, 바비 인형….

20대가 많은 프레인 직원이 어렸을 때 갖고 싶었던 선물이다. ‘세대 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어릴 적 갖고 싶어 했던 것과 나중에 커서 기억하는 선물은 달랐다.

“여섯 살 어린이날에 외가 마당에 가족들과 나무를 심고 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때는 ‘나무가 무슨 선물이냐’며 섭섭해했죠. 하지만 20년이 지나 남아 있는 선물은 그 나무가 유일합니다. 볼 때마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뿌듯합니다.”(강문정 씨·26)

○ 영원히 전달할 수 없는 선물

“엄마 별명은 밤에 우는 부엉이예요. 부엉부엉….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요. 엄마가 올 때면 숨기 놀이를 해요.”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숨어서 기다리는 것이 민주의 놀이가 됐다. 솔직한 아이의 표현에 박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민주 나이 정도 됐을 때 엄마에게 죽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 천사가 돼서 날 수 있고 엄마가 있는 학교로 갈 수 있다며 엄마 가슴에 못을 박았죠. 요즘은 내가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이 씨는 “성인이 된 딸을 도우려고 학교까지 그만두며 AS(애프터서비스)를 한다”면서도 안쓰러운 표정이다.

그에게는 영원히 전달할 수 없는 선물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녔던 어머니가 일본 교토로 수학여행을 가려다 집안 사정 때문에 못 갔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17, 18년 전쯤 같은 장소로 뒤늦은 여행을 보내 드리기로 했죠. 계절이 맞지 않아 7월로 일정을 바꿨는데 그사이에 돌아가셨어요. 나중에 보니 ‘노인네’가 여행 준비한다며 일본어 책까지 구독하셨더군요. 마음을 전하는 데 내일은 없어요. 비싸다고 다 좋은 선물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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