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시베리아 열차

  • 입력 2007년 5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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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흰 자작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늘어서고/순록이 빙벽을 넘고/역광을 받은 눈보라가 번쩍번쩍 빛난다.’ 시인 최하림의 시 ‘시베리아 판화1’은 읽기만 해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가는 느낌을 준다. 삼면이 바다에다, 북까지 가로막혀 섬 아닌 섬으로 살아온 우리 땅. 여기서 기차만 타면 휴전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고,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유럽까지도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권의 구상은 시인의 낭만을 뛰어넘는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TSR 연계 사업을 본격 추진하자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래서 남북 화해 협력은 물론이고 한반도가 동북아의 경제 중심이 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이 좋은 일을 왜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비밀 친서’로 제안했는지 의문스럽다. 국민 모르게 도모할 정권 차원의 이익이 없다면 말이다.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엔 푸틴 대통령이 더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TKR-TSR 연계로 유라시아의 중심 자리를 굳히고, 극동 개발로 수입도 올리며 남-북-러의 삼각 틀 속에서의 역할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게오르기 불리체프 연구부장이 지난해 ‘저팬 포커스’에서 밝혔다. 북한으로서도 미국의 압력에 대항할 능력이 커지고, 중국과 러시아 간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돈 안 들이고 철도를 개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바깥바람으로 정권이 흔들릴까 봐 길목을 내줄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1조 원 이상이 들 대북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은 있는지도 의문이다. 러시아에선 우리 정부가 기업을 동원해 돈을 대기를 기대한다는데, 우리는 1991년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제공한 경협차관도 다 상환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 백성 배 곯리는 북한이 돈을 댈 리는 없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좋지만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세금만 늘어날까 걱정스럽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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