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경주 신라공업고등학교

  • 입력 2007년 5월 4일 02시 51분


코멘트
신라공고는 기능경기대회에 처음 출전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불패’의 신화를 갖고 있다. 개교한 지 30년이 채 안 된 이 학교를 전국의 어떤 공업고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2일 자동차과 학생들이 서동욱 지도교사(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경주=이권효 기자
신라공고는 기능경기대회에 처음 출전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불패’의 신화를 갖고 있다. 개교한 지 30년이 채 안 된 이 학교를 전국의 어떤 공업고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2일 자동차과 학생들이 서동욱 지도교사(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경주=이권효 기자
주공야문… 기술과 학업 둘다 최고로

《“제가 ‘기술자’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자신감을 갖고 꿈을 키웠으면 하고 늘 바라지요.”

서울 용산구 원효로 현대자동차 애프터서비스센터에 근무하는 서보덕(27) 씨는 3일 “신라공고 후배들이 이공계를 살리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씨는 1999년 신라공고 3학년 때 참가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자동차 차체 수리 부문 금메달을 땄다. 이어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001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자랑하는 모교는 경북 경주시 천북면 신당리 산기슭에 있는 학생 800여 명의 신라공고. 다보탑과 석가탑을 조각한 신라 석공의 장인정신을 잇는다는 뜻에서 학교 이름도 이같이 지었다.》

○ 기술 실력과 진학 실적 겸비

신라공고는 개교한 지 30년이 채 안 되는 학교다. 전국 340여 개 공업계 고교 가운데 역사가 긴 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술에 관한 한 ‘전국 1등 학교’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이 학교 학생들이 기능경기대회에 처음 출전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메달 없이 빈손으로 돌아온 해는 없었다. 지난달 중순 열린 경북기능경기대회에서는 자동차와 전기 등 6개 분야에 출전해 금메달 6개를 거둬 지난해에 이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자동차 부문은 17년 연속, 전기 배선 분야에선 12년 연속 금메달이다. 국제대회에도 4명이 출전해 입상하면서 국가대표가 됐다.

이 학교를 찾은 2일, 자동차 수리 실습실 등에서는 9월 충남 천안시에서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할 학생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경북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3학년 최원석(19) 군은 “최고의 자동차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메달 제조기’로 불리는 서동욱(45) 교사는 “요즘 첨단산업을 강조하는데 첨단산업의 토대는 공업기술”이라며 “세계 1등 기술자를 배출한다는 신념으로 학생들과 함께 뒹군다”고 말했다.

실업계 고교생들이 대학 진학을 선호하면서 이 학교도 최근 들어 진학에 바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졸업생 257명 가운데 207명이 4년제 대학에, 41명이 전문대에 진학했다. 나머지 9명은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에 취업했다. ‘기술 지도와 대학진학 지도’의 두 토끼를 쫓느라 60여 명의 교사는 더욱 바빠졌다.

낮에는 작업복을 입고 기술을 가르친 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는 ‘반딧불 교실’을 연다. 학생들의 대학진학 지도를 위해 교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만든 주경야독 프로그램이다.

하봉조(48·전자기계) 교사는 “(현재 신라공고의 체제는) 문무를 겸비하는 사관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이라며 “대부분 이공계로 진학한다”고 말했다.

○ 학생들을 길러 내는 교사들의 힘

이 학교가 ‘기술과 진학’이라는 두 가지를 다 이뤄 낼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끈끈한 스승과 제자의 정(情)이 밑받침됐다.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학생 50여 명이 한 해 내내 먹는 김치는 이 학교 손수혁(61) 교장이 20여 년째 직접 자신의 밭에서 키운 배추로 담근 것이다.

교사들은 날마다 당번을 정해 학교에서 자동차로 왕복 30분이 걸리는 경주시내의 한 복지시설에서 도시락 30개를 가져온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급식을 못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해서다.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해 이 학교 교사들은 월급에서 십시일반 갹출해 지금까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 375명에게 6800만 원가량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손 교장은 “예나 지금이나 기술이 있어야 밥을 먹고 살고 나라도 튼튼해진다”며 “기술을 낮잡아 보는 분위기가 안타깝지만 결국 기술자가 우대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공고는 내년부터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특성화고교로 교육청의 승인을 받아 ‘기술명문사관학교’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경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