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액권 발행 계기로 화폐단위 변경도 논의를

  • 입력 2007년 5월 4일 0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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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5만 원권과 10만 원권을 2009년 상반기 중에 발행하겠다고 한다. 1만 원권을 처음 발행한 1973년에 비해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50배가 된 점을 감안하면 고액권 발행이 늦은 셈이다.

고액권으로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와 1만 원권을 대체 또는 보완함으로써 화폐 및 수표 발행·유통 비용을 연간 3200억 원 절감할 수 있다. 반면 큰돈에 대한 소비자의 감각이 무디어져 거래 단위가 커지고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불법정치자금 및 뇌물 거래가 쉬워진다는 문제점도 크다. 10만 원권으로 채우면 사과 상자 하나에 30억 원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불법거래 문제는 고액 현금 인출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사회의 투명화를 통해 해결해야지 불편한 화폐제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액면가치가 높은 고액권을 발행하지만 그 때문에 지하경제가 활개 치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은 이번에는 고액권 발행 계획만 추진할 뿐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제에 이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통계도 기껏해야 ‘조’ 단위에 그치지만 작년 한은의 결제액은 3경(京) 원이 넘었다. ‘0’이 16개나 붙어 읽기조차 힘들다. 이 때문에 정부나 한은도 거래 및 회계처리의 간편화를 위해 화폐단위 변경을 여러 번 추진한 바 있다.

이는 또 국가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해외여행을 할 때 현지 화폐의 가치가 낮아 뭉칫돈을 주고받게 되면 왠지 그 나라 경제력이 낮아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 달러화를 1000원 안팎의 환율로 교환하는 통화는 원화 하나뿐이다. 화폐단위 변경의 방법, 시기, 절차에 대한 논의를 마냥 미룰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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