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재보선, 열린우리당의 사실상 패배"

  • 입력 2007년 5월 2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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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일 4·25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 "왜 `한나라당의 참패'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열린우리당의 사실상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간과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한 '정당, 가치와 노선이 중요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세 곳 중 지역성이 강한 두 곳에서는 각기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승리하고, 지역성이 강하지 않은 곳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겼다. 정치의 큰 판으로 보면 한나라당은 경기도 화성에서 이겼으니 참패한 선거라고 볼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열린우리당은 경기도 화성에서 졌고, 다른 지역에서 쌍방간의 합의에 근거한 연대인지 일방적인 연대인지 알 수 없지만 연대를 한다며 후보도 내지 않았고, 더구나 막상 당선된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을 우습게 대하니 그야말로 쓰라린 패배를 맛본 것"이라며 "대의도 없고 실속도 없는 연대를 한 것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보다 정치적으로 더 큰 패배"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이 글은 재·보궐 선거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작성된 글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번 재보선에 대해 이 같은 평가를 한 뒤 "이는 선거 후유증을 겪는 한나라당 처지를 덮어주기 위해서 이거나, 비켜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열린우리당 상황을 일방적으로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정치권이 본질을 솔직하게 봐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비록 당적을 정리했지만 열린우리당이 지금 처해 있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은 정치상황과 맞물려 중요한 문제"라며 "대선에서 각 정치세력이 기본을 갖춘 조직을 형성해 건전하게 맞서는 구도가 형성돼야 수준높은 정책 대결이 가능하며, 그 이전에 산적해 있는 민생법안 개혁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것도 한나라당을 견제할 정치세력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현재 당 상황이든 재.보궐 선거의 책임이든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5년 전 민주당은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패배감에 빠진 당의 주류라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원칙을 팽개치고 정체성도 가능성도 모호한 다른 후보와 접촉하면서 자기들이 선출한 당의 후보를 흔들었다"며 "승리에 급급하여 한 일이겠지만 자칫 그 때문에 승리를 놓칠 뻔 했다. 분석도 대책도 다 잘못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열린우리당은 2년전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놓고 당이 시끄러웠다. 대통령이 공격을 당하고 지도부가 교체되었다. 1년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그랬다. 이번에는 아예 당을 깨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말로는 통합을 내세웠으나 실은 당을 깨고 정치구도를 지역으로 재편하여 살길을 찾자는 주장이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당을 깨자는 주장은) 대선 승리를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으나 대선이 목적이라면 당을 합치지 않고도 후보간 연대가 가능한 일이니 굳이 당을 깨자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통합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없이 당을 깨자고 한 것을 보면 각자 살 길을 찾는 속셈이 아니었는가 싶다"고 탈당파들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어떻든 열린우리당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을 포기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지역간 대결을 극복하고 전국에서 경쟁이 있는 정치를 하자는 뜻으로 세운 정당이며, 지역간 대결만 있는 국회는 정책에 의한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당간 경쟁없이 안방에서 손쉽게 당선되는 선거는 정치를 부패와 독선에 빠뜨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물론 열린우리당의 연이은 패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이후 당이 책임을 놓고 그렇게 싸우지만 않았더라면, 어렵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끈기있게 설득해 왔더라면, 비록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했을지라도 당의 존립 자체가 표류하는 지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또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의 결과이다. 지금부터라도 기본을 바로 잡고 다질 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정치는 성공할 수 없으며, 정치의 기본은 원칙과 대의"라면서 "정치에서 후보보다 중요한 게 정당이며, 정당은 정체성과 가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신념으로 뭉친 집단이다. 정당은 원칙과 대의에 따라 행동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정치는 상생과 통합이 아니라 대결과 분열의 정치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며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책임있는 행동보다 당부터 깨고 보자는 것은 창조의 정치가 아니라 파괴의 정치이며, 가치와 노선보다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정치는 선거에서도 역사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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