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상근]‘넘버1’ 미니기업을 위하여

  • 입력 2007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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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300’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에 맞서 싸운 스파르타 정예군 300인의 영웅담을 다룬다. 내용이 재미있지만 시각 효과도 뛰어나 조각과 같은 근육질 군인이 치열하게 펼치는 전투 장면에 힘입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영화 300을 보면서 동아일보 신년기획 ‘세계 최강 미니기업을 가다’ 시리즈를 통해 얻었던 교훈이 떠올랐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자기 병력이 소수임을 인정하면서도 페르시아 대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좁은 테르모필레 협곡을 전장으로 선택했고 하나로 뭉쳐 용감하게 싸웠다.

세계 최강 미니기업도 자기 기업은 대기업이 아니라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했지만 글로벌 대기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니기업은 대기업이 챙기지 못한 틈새시장을 선택했고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덴마크의 포스사, 대만의 HYC, 스위스의 MBT는 대기업이 뛰어들기 힘든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네덜란드의 가초미터사, 핀란드의 바이살라사, 오스트리아의 프레크벤티스사는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력에 승부를 걸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런 사례가 국내에는 없나 하고 아쉬워하던 차에 얼마 전부터 동아일보의 ‘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 시리즈가 시작됐다. 여기서도 작은 기업이라는 현실적 인식, 불굴의 기업가 정신, 틈새시장 공략, 차별화된 기술력 확보, 부단한 연구개발 투자, 고객만족 경영 등 세계 최강 해외 미니기업과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미니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을 뚫고 세계 최강의 자리로 발돋움한 또 다른 이유도 볼 수 있었다. 국내 미니기업이 흔히 갖는 최대 약점, 즉 고객의 신뢰 부족을 개선하기 위해 결함이 있는 제품을 전량 회수 폐기한 YG-1이나 잘만테크의 사례가 눈에 띈다. 노사 화합을 넘어 가족임을 외치는 한일이나 캐프의 경영방침도 성공 비결로 보인다.

얘기를 다시 세계 최강 미니기업으로 돌려서 작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운 사람은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누군가가 뒤를 잡아 주었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는 중요한 점이 있다. 뒤에서 잡아 준 사람은 언젠가는 자전거를 놓아 주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뒤를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닌 본인의 기술로 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자전거 타기처럼 국내 미니기업이 원활하게 경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물론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미니기업이 취약하다고 해서 무조건 보호하려는 정책은 결국 자전거 뒤를 끝까지 잡고 있어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일과 다름없다. 미니기업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국내 미니기업이 글로벌 대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는 동시에 세계의 폭넓은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군은 전멸했지만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의 빠른 조류를 이용해 군함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 국내 미니기업도 상대가 강하고 수가 많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FTA를 계기로 차별화된 기술력을 최대한 살려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세계 최강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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