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토플시험 대란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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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문화를 습득하는 도구 전 국민이 매달릴 필요 있을까

언어는 때로 권력이다. 로마의 지배자들은 그리스어로 즐겨 이야기했다. 서양 중세 시대 권력자들은 라틴어를 주로 썼다. 유럽 귀족들은 ‘교양 있는’ 프랑스어를 자기 나라 말보다 더 편하게 썼단다. 최고의 지식을 담은 외국어를 능숙하게 쓴다는 것은 특권층의 기본 조건이다시피 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권력 언어’는 당연히 영어다. 영어에 대한 집착은 출세를 향한 열망만큼이나 강하다. 최근의 ‘토플(TOEFL) 대란’은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린 나머지, 한국에서의 토플 시험이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노력은 결코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토플대란을 바라보는 마음은 슬프기만 하다. 토플은 영어권 나라의 대학이나 대학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만큼 영어를 하는지 재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대부분 어린 학생들인 수십 만의 응시자들에게 토플 성적이 왜 필요했던 것일까?

외국어는 사회 엘리트들이 꼭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그러나 옛날 지도층은 외국어를 그 자체로 공부하지 않았다. 로마의 젊은이들은 호메로스와 플라톤을 읽으며 그리스어를 익혔다. 중세의 사람들은 키케로의 웅변을 따라하며 라틴어 감각을 익혔다. 우리 선비들도 마찬가지다. 선비들에게 한자는 공부의 목적이 아니었다. 한시(漢詩)인 부(賦)를 읊거나,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策)을 읽고 쓰면서 언어 감각을 배웠다. 언어에 담긴 문화 고갱이에 온 신경을 모으면서 외국어를 조금씩 몸에 익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어 교육은 어떤가? 영어로 된 시를 읽는 학생이나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움을 아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학 공식을 외우듯 푸석거리는 외국말을 되뇌며 반복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란다. 노력하는 낙제생들의 공통점은 공부 방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책만 판다는 점이다.

언어 학습이란 문화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래서 생각 있는 지도자들은 언어 교육에 힘을 쏟는다. 국어교육은 한국인을 만들고, 독일인은 독일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독일 사람이 된다.

국제화 시대,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바보 같은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영어를 쓰는 영국과 미국이 왜 선진국이 되었는지를 우리는 과연 배우고 있을까? 최고의 깨달음은 항상 당연한 물음으로부터 나온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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