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생각나무]언어를 창조한 니콜라스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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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말이라는 게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아, 달리는 ‘말(馬)’ 말고 말하는 ‘말(語)’ 말이에요. 이를테면 ‘나무’나 ‘집’ ‘네모’ ‘무지개’ 같은 말을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요?

하느님이요? 글쎄요, 하느님은 천지만물은 창조했어도 낱말 하나하나까지 지어내지는 않으셨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혹시 세종대왕? 생각해 보니까 역시 아니네요. 세종대왕은 우리의 ‘글’ 한글을 만드셨을 뿐 우리 ‘말’을 만든 분은 아니니까요.

한글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쭉 사용해 왔답니다. 말하자면 말이 글보다 앞서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말을 누가 만들어 낸 걸까요?

“왜 이런 낱말이 이런 뜻이고 저런 낱말이 저런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개’라는 말이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짖는 동물을 뜻한다고 누가 정했나요? 누가 그런 거죠?”

이 재미있는 질문은 ‘프린들 주세요’라는 책의 주인공 니콜라스가 국어 선생님께 던진 질문입니다.

니콜라스는 지난번에 우리가 만나 본 ‘소피’ 못지않게 기발하고 재미난 생각을 잘 하는 친구랍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피가 ‘엉뚱이’라고 하면 니콜라스는 ‘꾀쟁이’라는 거지요. 니콜라스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특히 선생님 골탕 먹이기엔 선수지요. 어쨌든 니콜라스의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누가 개를 개라고 했냐고? 네가 그런 거야, 니콜라스. 너와 나와 이 반에 있는 아이들과 이 학교와 이 마을과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모두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거야.”

그렇습니다. ‘개’라는 말을 지어낸 사람은 어디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개’라는 말을 지어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비유해서 말하자면, 말이란 어느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발명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어느 한 사람이 마을을 만들어 낼 수는 없잖아요? 물론 맨 처음 그 땅에 산 사람이야 있겠지만, 마을을 마을답게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랍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얼짱’이라는 말은 10년 전에는 없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 되었지요. 아마도 맨 처음 그 말을 생각해 낸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얼짱’이라는 말을 ‘얼짱’이라는 말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가 그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말이 그 말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자신인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니콜라스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른 줄 아세요? 아주 기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다면 말이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를테면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짖는 동물’을 ‘개’가 아니라 ‘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그렇게 부르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꾀쟁이 니콜라스는 멀쩡한 낱말 하나를 아무도 모르는 새 낱말로 바꿔칠 계획을 세웁니다. 다름 아니라 ‘펜’이라는 말을 ‘프린들’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말로 바꾸는 거지요. 니콜라스는 그 계획을 남몰래 실행에 옮깁니다.

이를테면 문방구에 가서 ‘빨간 펜 하나 주세요’라고 할 것을 ‘빨간 프린들 하나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프린들을 깜빡 잊고 안 가져 왔어요’라고 시치미 뚝 떼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니콜라스의 계획은 그러나 대성공을 거둡니다. 사람들은 ‘글 쓰는 데 필요한 길쭉한 물건’을 가리켜 이제는 ‘펜’ 대신 ‘프린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몇몇 친구만 따라 하더니, 나중에는 모든 학교 친구들, 나아가 모든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온 나라 사람들이 ‘프린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국어사전에도 떳떳이 실리게 되었답니다.

어떻습니까? 재미로 시작한 니콜라스의 장난이 어떤 거대한 과학 실험 같지요? 말장난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던 게지요.

꾀가 많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걸 뜻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많다는 건 궁금한 게 많고 질문이 많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누가 ‘개’를 맨 처음 ‘개’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질문했던 니콜라스 같이요. 궁금하지 않으면 질문도 없고, 질문이 없으면 생각도 없는 법이랍니다.

※ 앤드루 클레먼츠 ‘프린들 주세요’(2001년·사계절)

김우철 한우리 독서논술 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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