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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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성(理性)’이지요. 이성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인데요, 이러한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 참 고맙지 않습니까?

여기에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준비물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여러분의 ‘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입니다.

안녕, 난 고등학생이야. 미국 펜실베이니아 애거스타운에 있는 펜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보다시피 키는 큰 편이야. 지금도 계속 크고 있는 중이라서, 내 키가 정확히 몇 센티미터인지 말해 줄 수 없어. 미안해. 학교생활 잘 하고 있냐고? 글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너에게 거짓말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줄게. 대신 나한테 약속해야 할 게 하나 있어. 내가 한 말을 단 한 마디도 우리 부모님께 말하지 않아야 해. 약속, 지킬 수 있겠니?

난 학교에서 쫓겨났어. 아직 학교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 중으로 난 학교를 떠날 거야. 왜 쫓겨났냐고?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나쁜 행동 때문은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며칠 전에 다섯 과목 시험을 봤어. 그 중 무려 네 과목에서 낙제를 했어. 작문 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과목에서 낙제한 셈이야. 우리 학교에서는 낙제한 학생을 가만히 두지 않거든. 위로해주지 않아도 돼. 학교에서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하지만 늘 쫓겨나기만 한 것은 아니야. 어떤 때는 나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거든.

너, 혹시 ‘가식(假飾)’이나 ‘위선(僞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 가식은 말이나 행동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위선은 마음은 전혀 아니면서 겉으로만 그런 체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야. 난 가식이나 위선을 정말 싫어하거든. 예전에 있던 학교, 그러니까 앨크톤 힐즈 고등학교는 가식적인 인간들로 가득한 곳이었어.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둬 버렸지. 특히,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악수를 나누곤 하던 ‘하스’ 교장 선생님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식적인 사람이었어. 왜냐고? 그 선생님은 돈 많은 학부모들하고만 악수를 했거든.

난 정말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은 참을 수가 없어. 그래서 영화도 아주 싫어해. 영화 배우들의 연기도 참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진짜 삶을 보여주지 않고, 가짜 삶을 흉내 내기만 하니까. 넌 어떠니?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건 뭐냐고? 난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을 가장 좋아해. 너 혹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것이 뭔지 아니? 그건 바로 어린이들의 눈망울이야. 그들의 눈망울은 아마 그 어떤 천사보다 맑고 깨끗할 거야. 그건 내가 자신할 수 있어.

부모님이 허락해 주실지 모르지만, 난 그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아주 넓은 호밀밭에 수천 명의 어린이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상상해 봐. 그 호밀밭에 있는 어른은 오직 나 하나뿐이야. 그리고 난 절벽 옆에 서 있지. 내가 하는 일은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이를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그러면 그 아이는 다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호밀밭에서 뛰노는 거지. 어때, 멋지지 않니? 그런데 너 지금 내 얘기 잘 듣고 있는 거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이해했니?

여러분은 호밀밭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로 보이나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바보로 보이나요? 아니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보이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황성규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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